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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책상 앞에

[독후감]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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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 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 | 강보라 | 서장원 | 성해나 | 성혜령 | 이희주 | 현호정
출판 문학동네
출간 2025년 3월 20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도전을 하는데, 내겐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늘 그렇다. 읽고 나면 내가 이걸 대체 왜 읽었나 반성하면서 늘 비슷한 시기가 되면 그래도 한 번 읽어봐야하지 않겠나라는 지적 호기심(?)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늘 이해에 실패하며 다시는 읽지 않겠다 다짐한다. 그리고 그 다짐마저도 실패한다. 하지만 그게 인간의 삶 아니겠냐며. 읽지도 못하는 글을 꾸역꾸역 읽어내고 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그것이.
 
 그래서 지금부터 시작되는 아주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내 머리 속에 강렬히 남은 작품들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여긴 내 공간이니까.

대상은 백온유 작가의 <반의반의 반>인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그냥 쏘쏘했고, 내 마음 속 넘버원은 강보라 작가의 <바우어의 정원>이었다. 그 짧은 분량에 인물도, 그 인물의 서사도, 인물들 간의 관계도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작가의 말이 진하게 다가왔다. <바우어의 정원>이 아니었다면 조금 고민했을 작품은 이희주 작가의 <최애의 아이>. 젊은작가상 문제작작품집이었다면 단연코 대상이지 않을까. 작가가 제시하는 세계관, 인물의 가치관, 이야기의 결말까지 모든 것이 문제다. 나의 가치관도 흔들어재끼는 어마어마한 작품이었다. 이희주 작가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아주 기대가 크다.

가장 어려웠던 작품은 현호정 작가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개인적으로 아무리 단편이어도 말장난 같은 혹은 현학적인 느낌이 드는(이 작품이 현학적이라는 게 아니고) 글은 싫어한다. 한 번에 읽어서 바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글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뇌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다시 읽어야하는 걸 싫어한다는 뜻이다. 그런 맥락으로 현호정 작가의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알겠으나 퍽 내게 와닿지는 않았다. 내 문제다. 내 문제이므로 내가 피해가면 될 일.
 
 성해나 작가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2024년 봄에 발표된 것인데, 지금 타이밍이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유명인이 과거의 잘못된 행동이 파묘(?)되어 한 순간의 나락으로 가고 그를 따르던 팬들은 실망하여 돌아서거나,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애쓰거나. 잊을만하면 한번씩 유사한 사건이 터지지만, 아무래도 요근래는 워낙 빅사고가 터져서 작품이 시기를 잘 만났나 싶다.


 
📌 백온유 <반의반의 반>
영실, 윤미, 현진의 3대가 영실이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오천만원의 행방을 찾는다. 가져본적도 없는 오천만원에 대해 생각하며 이 가족은 각자가 잃어버려야 했던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떠올리고 영실의 희생이 당연한 것도 아닌데 살갑지 않았던 영실에게 실망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 강보라 <바우어의 정원>
은화는 삼년동안 세번의 유산을 겪으며 공백기를 가졌다가 다시 연극을 시작하기 위해 오디션을 본다. 오디션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후배 정림과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두 사람은 놓친 시간동안의 서로의 삶을 좇아나가다가 마침내 비슷해보여도 완전히 다른 서로의 아픔을 공감한다. “아득한 과거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마침내 은화를 따라잡았다.”
 
📌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키 작은 남자 오스틴과 트렌스젠더 토미는 남성동성집단에서 비슷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코 비슷하지 않다. 무례할 정도의 여성혐오 발언을 하면서도 여자를 만나기 위해 사지연장술을 받은 오스틴을 마주하며 토미는 “나는 당신의 고통과 슬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신이 싸우고 있는 방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우리는 어쩌면 동지가 될 수 있고, 또 동료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결코 전우는 될 수 없다고. 나는 당신이 벌이고 있는 그러한 싸움에는 결코 동조할 수 없으며, 당신과 달리 나의 콤플렉스를 결코 혐오의 방향으로 전치시키지 않을 거라고”.
 
📌 성해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나’는 우연히 영화를 본 것을 계기로 영화감독 김곤의 열렬한 팬이 된다. 도덕적으로도 커리어적으로도 완벽해보였던 김곤은 아역배우를 학대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이미가 실추되고 나는 팬덤 커뮤니티를 통해 활동하며 김곤에 대한 길티guilty와 플레저pleasure 사이의 나를 경험한다.
 
📌 성혜령 <원경>
신오는 가족력이 있다는 이유로 여자친구 원경과 헤어진 이후로 갑작스럽게 암진단을 받는다. 신오는 오랜만에 원경에게 연락하고 원경은 전 남자친구를 산으로 초대한다. 그 산에는 원경의 이모가 쓰레기 팽개치듯 자신에게 유산으로 주어진 산에서 멋진 집을 짓고 혼자 살고 있었고, 남편 돈을 떼어먹은 비구니를 찾아 산에 들어온 여자가 있었다. 네 사람은 함께 산불로 그을린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며 금을 찾는다.
 
📌 이희주 <최애의 아이>
30대의 우미는 23세의 아이돌 유리를 사랑하게 된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유리의 정자를 공여받아 임신을 하여 유리의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 성공적인 임신과 출산 끝에 아이를 낳았지만 정자 바꿔치기 논란이 터지고 유리의 정자가 아니라 어느 정치인의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 현호정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지구가 바다 행성이 된 미래와 부랑자와 K가 만나는 현재의 시간이 넘나드는 액자소설. 자연재해로 인해 전 지구적 종말이 닥친 인류세의 이후의 미래 이야기를 부랑자는 K의 카페에 찾아와 자신에게 빙의한 존재가 경험한 일이라며 들려준다.


 어렸을 때는 단편작품을 싫어했다. 어줍지 않은 은유, 현학적이다 못해 괴랄맞은 문장, 그들끼리만의 세상에 나는 끼어들지조차 못하는 그 느낌이 너무 싫어서. 하지만 열심히 읽어내다보니 내가 접했던 것들이 이상했고, 세상에는 좋은 단편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편이어도 서사가 훌륭하고, 조금 어렵게 문장을 풀어낼지언정 독자에게 친절한 작품도 많았다. 물론 장편 소설들을 여전히 더 좋아하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나를 자극시켜주는 단편 소설들도 좋다. 나의 수용의 감각이 무디지 않도록, 세상을 향한 나의 더듬이를 잘 세워봐야겠다.
 
"감정은 실제 삶에서 겪은 현실적인 영역에 의존해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할수록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된다고 본 것이다."  P. 95 전청림 해설: 마이즈너식 기품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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