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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책상 앞에

[독후감] 번역: 황석희(황석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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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황석희

저자 황석희

출판 달

2023년 11월 17일

 

| 황석희

18년째 머릿속에 '번역'만 넣고 살다보니 일상이 다 번역이다.

영화 대사도, 타인의 말도 잘 번역하고 더 깊이 이해하는 썩 괜찮은 번역가가 되고 싶다. 운이 따른다면 그렇게 번역한 소소한 일상들을 독자들과 자주 나누고 싶다.

 

<데드풀>, <스파이더맨>, <아바타> 등 영화를 주로 번역하고 <썸씽로튼>, <하데스타운>, <미세스 다웃파이어>처럼 뮤지컬, 연극, 책도 번역하는 잡식성 번역가다.

 


책 제목을 요리조리 봐도 신기하다. 단 두글자, 번역. 본인의 삶을 관통하는 그리고 여러 단어들을 쳐내고 단 하나만 남긴다면 최후까지 남을 하나의 단어일 것 같다. 그리고 세미쿨롱에 더해 이름 석자. 자신의 일을 사랑해왔고, 계속해서 그 일을 해나갈 것 같은. 과연 그 분야를 계속 파고 팠으며 앞으로도 이어나갈 의지가 보여진다. 그런데 제목은 작가 본인이 아니라 출판사의 추천이었다고 한다. 마치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오르며 '번역 황석희'를 떠오르게도 한다.

 

18년 정도 같은 일을 하면 일과 사람을 떼어놓을 수가 없다. 특히 프리랜서의 경우는 더욱 그러할텐데 번역가의 삶은 번역이라는 일과 생활을 구분할 수 없을테지. 그래서 그의 삶의 이야기는 모두 일과 연결되어 있다. 한 분야의 정통한 사람의 에세이는 그렇다. 삶과 일이 엮여있다. 하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묶여져 있어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된다는 응원을 보내주는 듯 하다.

 

번역이라는 직업, 그 세계에 대한 번역가의 따뜻한 시선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온다.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어머니가 아들이 번역한 영화를 보러 간 이야기에서는 눈물이 조금 났고,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나쁜 말을 주고 받았던 아버지와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다. 좋은 글이란 잘 읽히고 그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같은 공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전업작가는 아니나 누구보다도 말을 전달하는데 힘써왔던 사람의 글은 참 잘 읽혔고, 번역가의 삶이지만 다른 수많은 누군가의 삶인 것만 같아서 글이 좋았다.

 


[1부] 최대 두줄, 한 줄에 열두 자

 

📌실패하고 배우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이는 성실함. 이런 미련한 성실함은 단순해 보여도 아무나 쉬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 갈수록 재능이니 결과니 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노력과 성실을 저평가하는 분위기가 나는 아주 고깝다. ... 노력과 성실도 재능이라는 걸 언제쯤 이해할는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잘해야지-

 

[2부] 나는 참 괜찮은 직업을 골랐다

 

📌“어쩌다보니 이 일을 하게 됐어요”라는 말은 어찌 보면 그 어떤 사연보다도 운명적이다.

-어쩌다가 됐어요-

 

📌오지랖은 자신의 알량한 경험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보내는 어긋난 호의다. 그래, 일단은 호의라고 믿자. ... 당신과 나 사이엔 적게 잡아도 봄철 황사 먼지 수보다 더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 많은 차이점을 무시하고 모두가 당신과 같은 경험을 하리라 단정하는 건 오만이다.

-세상 모든 오지랖에 부쳐-

 

📌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과의 마지막날이 있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래서라도 소중한 사람에겐 물론이고 아무리 싫은 살마이라도 마지막 인사는 무던히 하는 게 좋다. 억지로 상냥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상처를 줄 필요도 없다. 그저 덤덤하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은 인사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까-

 

[3부] 1500가지 뉘앙스의 틈에서

 

📌경험을 근거로 이 문장이 풍기는 뉘앙스의 냄새를 맡는 것. 감독이 아닌 이상 정확한 뉘앙스를 알 순 없지만 정확에 근접한 뉘앙스를 포착해내는 것. 그게 영화 번역가의 일인 것만 같다.

-뉘앙스의 냄새를 맡은 사람-

 

📌어떤 영화를 좋게, 혹은 좋지 않게 봤다면 내게 어떤 면이 좋았고 좋지 않았는지, 어떤 감상이 있었는지를 쓰면 된다. 남의 감상을 끌어와서 평가하는 건 영화평이 아니라 '타인의 영화평에 대한 평'이다.

-취존이 어렵나?-

 

📌 무엇이든 경험해야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단언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고 경솔하고 무례한 일이다.

-나는 태어나면 안 되는 사람이었을까-

 

📌생각의 속도에 맞춰 말하려면 말의 속도를 예전보다 20~30%쯤 늦춰야 한다. 생각이 다음 단어와 표현들을 떠올릴 동안 말의 속도가 시간을 벌어주는 거다.

-생각의 속도-

 


영화 번역가도 영화를 볼때 자막을 본다고 한다. 오히려 자막이 없으면 영화를 안 보신단다. 프로가 작업했으니 프로의 작업물을 믿는다고 하니, 영화보실때 자막을 보시나요 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또한 번역을 하다보면 오역은 어쩔 수 없는 부산물이다. 어떻게 100% 완벽한 번역이 있을 수 있을까. 완벽한 번역이라는 것이 원문을 100% 통역한다는 것이라면 그또한 불가능하다. 번역가라는 사람이라는 필터링을 거치면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 문화권 등을 무시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 영화 볼때 저 자막이 맞을까 아닐까 피곤하게 고민하며 보지 않기로 하자. 그 단어 하나하나를 맞을까 아닐까하며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지 않을까. 얼마나 쓸데없는 잉여에너지가 많은지 굳이 번역가님께 모욕적인 메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가님, 그래도 그 인피니티워 쿠키는 너무했잖아요... 그런 번역가가 있으니 갓황석희를 외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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