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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책상 앞에

[독후감] 음악소설집(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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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설집

김애란 | 김연수 | 윤성희 | 은희경 | 편혜영

출판 프란츠(Franz)

출간 2024년 6월 26일

 

이름만 들어도 신뢰감이 확 생기는 작가들이 음악을 주제로 하여 글을 쓴 앤솔로지다(앤솔로지: 시나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을 하나의 작품집으로 모아놓은 것). 5명의 작가가 각각 1편씩 글을 써서 총 5편의 단편이 담겼으며 마지막 챕터에는 편집자와 작가들 간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특정 노래나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의 경우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 좋다.

 

일단 워낙에 필력들이 좋아서 이야기에 금방 빠져든다. 뜬구름 잡는 단편들이 아니라 서사구조가 확실하다. 덕분에 단편이라면 젬병인 나도 5편 모두 잘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대충대충 은유 몇개 던져놓고 이건 내 작품이야라고 으시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한 번 들어볼래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섯 작품 모두.

 

다섯 작품 모두 좋았지만 내가 조금 더 마음을 준 것은 윤성희 작가의  ⌜자장가⌟. 애틋할 수 밖에 없다. 아빠 없이 엄마와 딸이 둘이서만 함께지내왔는데 어느날 예고도 없이 딸이 교통사고로 죽어버린다. 엄마는 그저 혼자 묵묵히 삶을 버텨낼 뿐이고, 딸과 나누어 신었던 짝짝이 양말을  오직 그것뿐이라는 듯 매일매일 신고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엄마의 곁을 맴돌며 나는 엄마의 꿈속에서 엄마와 함께 한다. 꿈속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한살씩 나이를 먹어가며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딸도 낳고. 그리고 예순 살이 되면 세계 일주를 할 것이다. 그런 엄마의 꿈을 마치 지켜주기라도 하는 듯, 딸은 계속 자장가를 불러줄 것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면서 왜 죽으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일까.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면 부모에게는 남은 삶이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도 할 수 없는데, 그 딸이 영혼이 되어 부모의 곁을 지켜준다는 이야기는 지금 이렇게 후기를 남기면서도 너무나 울컥하다.

 

📌 나는 엄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중에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줄게. 그러면 엄마는 또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되어줘." 그렇게 속삭였더니 할머니는 사라지고 내가 할머니가 되었다. 나는 내 무릎을 베고 누운 엄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나는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자면서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p. 126,  ⌜자장가⌟ 중에서 

 

같은 결로 좋았던 것이 편혜영 작가의  ⌜초록 스웨터⌟.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가 뜨다만 초록 스웨터를 남겼다. 딸인 경주는 오랜 세월동안 그 스웨터를 뜨고 있는데 실력이 좋지 못하다보니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대학 때 제법 친했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연락이 끊긴 친구의 도움도 받았고, 남자친구의 도움도 받았다. 엄마가 뜨던 실을 구할 수 없어서 비슷한 색감의 실을 구해다 뜨기도 했다. 엄마의 친한 친구였던 영주 이모와 나주 이모도 손을 보태주었다. 그래서 얼룩덜룩하기도 하지만, 그 얼룩덜룩함이 보여주는 것은 마치 모두가 힘을 내서 경주의 추억을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위로가 되었다. 따뜻했다. 그래도 삶을 살아내야하는 것이지만 떠나간 사람이 남겨준 추억, 그리고 그 추억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남은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 같달까.

 

📌 내게 오백만 원은 없지만 어쩌면 백만 원일지 모르는 동전 네 개와 언제나 십구만 팔천 원이 든 지갑이 있다는 걸 잊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뜨다 만 스웨터도 있고 엄마의 노래가 담겼을지 모를 테이프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내게 슬픔만 남겨두고 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손을 마주 잡았을 때의 느낌을 기억했다. 삶에 냉담해질 이유가 많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그 기억 때문이었다.

p. 196-197,  ⌜초록 스웨터⌟ 중에서

 


1. 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 Love Hurts - Robert Pollard & Kim Deal

 

어머니의 오랜 간병 끝에 경력이 단절되고, 결혼을 약속했던 헌수와도 헤어진 사십대 중반의 은미. 답답한 마음에 온라인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은미는 영어를 배우는 사이트 에코스에서 초등 교사로 일하고 퇴직한 육십대 초반의 로버트를 알게 된다. 로버트와 대화를 나누며 은미는 헌수오 함께 들었던 'Love Hurts' 를 듣던 그날을 떠올린다.

 

| 김애란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이 있으며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등을 수상했고, ⌜달려라, 아비⌟의 프랑스어판이 프랑스 비평가와 기자들이 선정하는 '리나페르쉬상(Prix de I'inapercu)'를 받았다.

 

 

2. 수면 위로 - 김연수 🎵 달빛 - 드비쉬

사랑했던 기진을 잃고 겨우겨우 일상을 버텨내던 은희는 우연히 돈 한 푼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는다는 유투버 '유주'의 영상들을 보게된다. 영천에 머물던 유주는 오므라이스를 잘한다는 어느 유명한 영천의 중국집에서 기진을 만나게 된다. 기진과 유주가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보면서 나는 기진이 들려준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떠올린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꿨던 기진의 엄마는 기진을 임신하게 되고 결혼을 하면서 그 꿈을 접게 된다.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 때문에 기진에게 따뜻하지 못했던 엄마와 '영천에서 오므라이스'를 함께 먹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 김연수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이토록 평범한 미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장편소설  ⌜7번국도 Revisitied⌟,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일곱 해의 마지막⌟ 등이 있으며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3. 자장가 - 윤성희

아빠와 이혼하고 나는 엄마와 둘이 살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전교생이 모두 짝짝이 양말을 신고 오는 날, 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다. 나는 영혼으로 남아 계속 엄마의 주위를 맴돈다. 그러다 다른 영혼을 만나 산 사람의 꿈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게 된다. 나는 엄마의 꿈으로 들어가 엄마에게 자장가를 들려주며 꿈속에서라도 어린 엄마가 성장해서 꿈을 이루게 되는 나날들을 꿈꿔본다.

 

| 윤성희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베개를 베다⌟,  ⌜날마다 만우절⌟, 장편소설  ⌜구경꾼들⌟,  ⌜상냥한 사람⌟, 중편소설  ⌜첫 문장⌟ 등이 있으며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4. 웨더링 - 은희경 🎵 행성(수성, 목성, 해왕성) - 구스타브 홀스트

서울역에서 G시로 가는 기차안에 서로 마주보는 4인석에 서로를 모르는 기욱, 인선, 준희 그리고 어느 노인이 앉는다. 각자 서로 다른 사정으로 G시를 향해가는 네 사람의 머릿속을 연결해준 것은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 노인은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 악보를 꺼내 읽는다. 악보를 본 준희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검색해서 감상하고, 인선은 음악에 얽힌 옛 남자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기욱은 클래식 전공자의 길을 가게 했던 음악 교사를 떠올린다.

 

| 은희경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빛의 과거⌟ 등이 있으며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5. 초록 스웨터 - 편혜영

열일곱살에 병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이후 경주는 대학 졸업해서 직장에 다닐때까지 줄곧 엄마의 친한 친구였던 영주 이모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경주는 엄마가 죽기 전 남기고 간 뜨다만 초록 스웨터를 그 세월동안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뜨고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감이 잡히지도 않게 엄청 큰 스웨터지만. 어느 날 영주 이모는 경주에게 연락해 또다른 친구였던 나주 이모를 찾으러 가자고 한다. 

 

| 편혜영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소년이로⌟,  ⌜어쩌면 스무 번⌟,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홀⌟ ⌜죽은 자로 하여금⌟ 등이 있으며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 인터뷰: 고요와 소란 사이에서, 음악과 이야기 사이에서 다섯명의 작가와 편집자가 함께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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