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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책상 앞에

[독후감] 아랑은 왜(김영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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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랑은 왜
저자 김영하
출판 복복서가
(2020.07.20 개정)



익숙한 이야기를 '다르게' 쓴다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 참고문헌 자체가 허구인데, 있지도 않은 정옥낭자전을 근거로 설명을 하니 하도 그럴듯하여 금방 수긍을 하게 된다. 검색의 생활화가 필요하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력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니, 김영하 작가는 과연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소설의 주요 이야기인 정옥낭자전이 허구의 작품이라는 것은 소설이 끝난 후에야 밝혀진다. 그런데 문학동네 버전에서는 이 부분이 잘리고 말았다고 한다. 거 참, 무책임하기 그지 없네. 10년만에 개정된 복복서가판에는 이 부분이 명시되었다.
 
- 아랑 전설
경상남도 밀양 영남루에 얽힌 전설로, 아랑의 본명은 윤동옥으로 밀양부사의 딸이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에게서 자란 미모의 처녀로, 음흉한 유모와 통인(지방 관아의 심부름꾼) 주기가 흉계를 꾸며 어느 날 밤 달 구경을 나온 아랑을 욕보이려 하였다. 아랑은 통인에게 결사코 항거하다가 끝내는 칼에 맞아 죽고, 대숲에 버려졌다. 부사는 아랑이 외간 남자와 내통하다 함께 달아난 것으로 알고 벼슬을 사직하였다. 이로부터 밀양에서는 신임 부사마다 부임하는 첫날 밤에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어 모두 그 자리를 꺼리게 되었는데, 이 때 이상사라는 담이 큰 사람이 밀양부사를 자원하여 왔다. 부임 첫날 밤에 나타난 아랑의 원혼에게서 억울한 죽음을 들은 그는 원한을 풀어주기로 약속하였다. 이상사는 곧 백가를 잡아 처영하고 아랑의 주검을 찾아내서 장사지내니 그뒤로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 정옥낭자전
 1) 주인공은 어사 조윤을 수행하는 김억균이다. 그는 서얼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풀칠하며 사는 하급관리이다. 조윤을 따라 내려간 경상도 밀양 땅에서 소문으로 무성하던 신임 부사 이상사를 만난다. 이야기의 그는 키가 칠 척(2m가 넘는다)에 달하는 기골장대한 인물이었으나, 실제로 만나게 된 그는 키가 오 척(151cm 정도) 정도에 등이 약간 굽고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자였다.
 
 2) 탐정소설의 결을 따라간다. 억균의 눈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상사의 풍채뿐 아니라, 속을 모르겠는 호장도 그러했다. 그의 약간 허술한(?) 수사와 추측 덕분에 진실은 밝혀지나, 진실에 관심없는 어사 조윤에 의해 억균의 활약을 묻혀지고 만다.
 

아래는 정옥낭자전의 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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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은, 밀양 고을에 급작스런 물난리가 나서 제방이 무너지고 말았다. 제방 근처에는 왕실의 재산인 국둔전이 있었기 때문에, 제방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대단히 큰 실수였다. 전임 부사 윤관은 관리들과 함께 제방을 다시 축조하였는데, 공사를 두 달이나 남기고 갑자기 여식의 실종을 핑계삼아 한양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식의 실종이라는 것은 다 허무맹랑항 거짓말이었는데 아랑은 윤관의 딸이 아니라 첩이었으며, 호장의 딸이었다. 아랑이 관노 안국과 눈이 맞은 것에 분노한 윤관이 아랑을 죽이고 안국은 입을 막기 위해 옥을 가두었는데, 갑자기 윤관이 밀양을 떠나버리면서 남은 호장과 아전들이 그 뒤치닥꺼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신임 부사가 오면 금방 들통날 사실들(제방 축조, 아랑의 죽음)이라 호장 개인뿐 아니라 가문이 몰락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신임 부사가 내려오는 족족 독을 이용해 죽인 것이다.

 
3)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스토리다. 결국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권선징악 같은 결말까지.
 
- 사실 아랑이 어쩌니 저쩌니, 나비에 얽힌 이야기와 아랑 전설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서두는 조금 지루하고, 읽는 속도가 더디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이 작품은 무슨 장르지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한달까. 하지만 본격적으로 '정옥낭자전'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냥 쉽게 지나쳤던 전설 혹은 민담의 빈틈들이 발견되고, 그 빈틈들에 관심을 갖게 되면 뿌려놓은 떡밥들이 눈에 띈다. 특히 주인공격인 김억균이 수상한 사건의 이면을 들춰내기 시작하면서는 아드레날린이 막 분비되는 느낌도 들었다.
 
-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쓴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는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기존의 것과는 다른 차별성을 두면서 독특한 개성이 있어야 하니까. 흔하디 흔한 민담에서 영감을 받아 그 안에 음모를 심고, 추리를 심고, 그 뿐 아니라 그것을 독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유능한 이야기꾼과 아닌 이를 구별하는 능력이 아닐까. 천상 이야기꾼인 작가의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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