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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책상 앞에

[서평]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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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저자  현찬양
출판 엘릭시르(문학동네)
발간 2022.09.02


"나에겐 이야기가 필요해. 그것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기이한 이야기라면 더 좋겠지."


한 가지 약조를 해주셔야 합니다.
우리 궁녀끼리는 비밀 이야기나 괴이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반드시 귀를 씻는답니다.
귀 씻은 물을 대나무밭에 부으면 비밀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받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을 돌아다니지 않고,
오로지 대나무숲만 헤맬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약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팩트와 픽션을 절묘하게 오가는 한 여름 밤의 기담이다. 결말이 너무 활짝 열린 채 끝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한데 그 아쉬움을 외전으로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외전이 찐인데, 소설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끝까지 읽어야 반전(?) 스토리에 대한 꽉 찬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소설 속 '백희'가 겪었던 과거의 일은 모두 진짜인건지, 사람 같다가도 허상과도 같은 백희에 대해 엄청 궁금하고 아리송하다.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야기 속 귀신보다 더 허상같은 존재도 작품에 등장한다. 아주 솔직히 너무 허구스러운 인물이 등장했을때는 살짝 맥이 빠진 감도 있었지만, 태종이라는 실제 역사적 인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정도로 픽션을 쏟아붓는다? 그 상상력에 대해 응원해주고 싶다.

 '백희'와 함께 매일 밤 기담을 나누는 어린 궁녀들과 궁주는 흘러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누구 하나 허튼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들의 밤 중의 기담은 대낮에 궁궐에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과 연결이 된다. 구중궁궐, 오직 왕 하나를 보필하기 위한 내명부의 여자들과 이름 하나 제대로 기억되기도 어려운 수많은 궁녀들. 그런 곳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짜가 아닌 걸 알면서도 진짜로 있을 법한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더운 여름 밤에 선풍기 바람 쐬며 후루룩 읽어내기 좋은 작품이었다. 가을 밤 선선해진 공기를 즐기며 후루룩 읽어내기도 좋을 듯하다. 매서울 겨울 밤에는 내가 마치 어두운 궁궐의 어딘가 마당 한 가운데 새카만 밤을 벗삼는(?) 궁녀라고 생각하며 읽으면 더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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