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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극장 1열

[리뷰] 영화 바빌론 (Babylon,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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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023.02.01

국가 미국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89분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브래드 피트(잭 콘래드), 마고 로비(넬리 라로이), 디에고 칼바(미구엘), 진 스미트(엘리노어), 조반 아데포(시드니 팔머), 리 준 리(레이디 페이주), 토비 맥과이어(제임스 멕케이)

 

| 시놉시스

 

"모든 순간이 영화가 되는 곳 - 바빌론"

 

황홀하면서도 위태로운 고대 도시, '바빌론'에 비유되던 할리우드

'꿈' 하나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강렬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

 

 

| 후기 REVIEW

 

- 한 줄 요약: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린 꿈들이 모인 할리우드, 소름끼치게 사실적인 다큐멘터리와도 같았다.

 

-  극장에서 보려고 했는데, 스케줄도 안 맞고 이래저래 흘러가느라 결국 보지 못했던 영화를 VOD로 보게 되었다. 상영시간이 189분. 살짝 버거운 러닝타임이라 선뜻 재생 버튼을 누르기 쉽지 않았지만, 다 보고 나니 대단히 놀랍게도, 정말 글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영화 초반에는(매우매우 극 초반) 선정적이다 못해 생리적으로 더럽기까지 한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그리고 하도 대놓고 벗어대니 섹시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살색의 무언가들이 둥둥 떠다닐 뿐 아무런 감흥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초반의 선정적인 몇 장면들로는 절대 대변할 수 없는 깊이가 있는 작품이다. 살색의 장벽을 넘어서면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있다고나 할까.

 

- 1920년대 중후반부터 50년대에 이르기까지, 무성흑백영화가 유성영화를 거쳐, 컬러에 이르는 빠른 발전 속에서 헐리우드의 빛나던 별들이 떠오르고 져가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잭 콘래드는 무성영화의 시대에 주름잡던 대스타. 대충 술쳐먹다가(?)가도 액션을 외치면 잘생긴 얼굴에 더 잘생긴 연기를 펼치며, 시나리오도 자기 입맛대로, 출연배우도 자기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정말 대스타였다. (그리고 인기에 힘입어 결혼과 이혼도 엄청 반복하는). 그러나 영화에 '사운드'가 등장하면서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대사를 외워서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건 엄청난 혁명이었다. 이제까지 그냥 잘생기고 예쁜 얼굴에 표정 연기만 하면 되었는데, 말을 해야한다. 대사를 한다는 건 단순히 말만 하는게 아니다. 연기의 톤, 발성, 감정 전달까지 무성영화의 배우들이 단번에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누군가는 변화가 기회가 되지만 누군가에는 도태의 시작이었고, 잭 콘래드가 그러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실력이 드러날 수 밖에 없고, 그가 나이듦에 따라 차츰차츰 그를 찾는 관객들도, 제작자들도 줄어갔다. 가장 찬란히 빛나던 그는 그렇게 정상에서 내려와야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쓸쓸한 마무리를 맞이한다. 

 

- 가장 화려한 무대를 다음에 올라올 이들에게 내어주고 내려가야한다는 것. 이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삶의 모든 곳에 해당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에 속해있지만, 언젠가는 내 부모세대처럼 나이가 들고, 젊은 인재들에게 자리를 내어줘야하므로, 내려와야한다. 그것은 당연한 삶의 단계이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어떻게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어떻게 그게 그렇게 쉬울 수 있는가. 박수칠 때 떠나라니 말은 쉽지, 그게 그렇게 마음 먹은대로 될까. 잭은 그러지 못했다. 등 떠밀듯 내려온 어딘가에서 그는 방황하고, 힘들어했고,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비단 어느 '은막의 스타'의 결말이 아니다. 

 

-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는 배우가 되고 싶은 어린 여성이다. 재능도 충분하다. 몸도 잘 쓰고, 연기도 잘하고, 대사도 그럭저럭 잘 친다. 하지만 성공의 단맛에 취해 도박에 빠져들고, 약에 빠지며 자꾸만 추락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미구엘이 어떻게든 그녀를 도와 다시 배우 커리어를 살려보려고 하지만 눈물 겨운 그의 순애보에도 불구하고 넬리는 어렵사리 마련한 기회를 차버리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녀는 그렇게 라이징스타로만 기억된채 쓸쓸히 사라진다. 영화 초반 그저 싱싱한 젊은만으로도 가장 찬란히 빛나던 그녀가 내내 망가져가는 모습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헐리우드 한 복판에 저런 이들이 무수히 많았을거란 생각에 더욱 씁슬해진다.

 

- 미구엘은 영화가 좋아서 멕시코에서 넘어온 청년이다. 어떻게든 영화판에 뛰어들어보고자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법 머리도 잘 돌아간다. 덕분에 그는 잭의 일을 돕게 되면서 영화제작판에 들어온게 된다. 능력도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면서 좋아했던 넬리를 다시 만나 그녀를 돕고자 한다. 하지만 넬리는 혼자 파멸하지 않았다. 미구엘을 끌고 들어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함께 빠져들게 된다. 결국 미구엘은 그가 사랑했던 영화를 떠나 멀리멀리 도망친다. 오랫동안 영화와는 닮을 쌓고 지내던 그가 영화관에 들어서 무수히 영화를 보며 울고 웃고 감격하던 장면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주제를 집약한 것 같다. 영화라는 엄청난 상업의 발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이들이 재능을 뽐내고, 바치고, 누군가는 좌절하고 잊혀졌으며, 누군가는 도망쳤지만 그들 모두는 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힘을 보태왔다. 미구엘의 그 꿈같았던 시간들 역시 그저 흘러간 것이 아니라 분명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는 허투루 살지 않았다.

 

- 어떻게 내가 잭이날 넬리처럼 화려한 인생을 살 수 있겠는가. 나는 또다른 미구엘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열심히 꿈을 쫓아 살아가는 미구엘이다. 지금의 내 자리가 작고 초라하고, 나의 글이, 나의 말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사실 우리는 시대의 큰 흐름 속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참으로 작아보일지 몰라도, 나를 대신할 사람이 있을지라도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이 남아서 누군가의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해주는 영화 '바빌론'이었다. 영화의 화려함 속에 너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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