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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책상 앞에

[서평]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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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연수

출판 문학동네

발간 2020.07.01

 

시인 백석. 본명은 백기행. 백석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였고, 백석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근데 그 시는 1938년에 발표한 시다. 아직 해방 전, 하나의 나라가 두 개로 갈라지기 전의 작품. 1930~40년대의 그 문인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한 답이 되어주는 글이랄까.

 

1957년부터 마지막 시를 쓰는 1963년, 그 7년간의 백기행에 대한 이야기. 광복 이후에 이제는 살만하겠다 싶었겠지만, 한국전쟁 이후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삶은 아마도 그가 생각했던 세상이 아니었을테다. 오직 한 명에 의한, 그 한 명을 위한 사회에 살면서 '당의 이념' 앞에서 기행은 그들의 입맛에 맛는 시를 쓰기를 요구받지만 기행은 러시아문학 번역에 집중하며 애써 현실을 외면한다. 

 

 

"'시바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개조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 시바이를 할 수 있다면 남고, 못하나면 떠나라. 결국 남은 자들은 모두 시바이를 할 수 밖에 없을 텐데.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이런 세상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p.31

 

 

그러나 기행은 자신을 속일 수 없었나보다. 책 속의 기행에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호기롭게 자신의 문학적 의지를 불태우고 밀고 나갈수도, 그렇다고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고 다른 이들이 원하는 대로 글을 써내지도 못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른 바 '회색'의 사람. 그러나 색을 정하지 못한 이는 누군가에게는 같은 편이 아닌 자로 보일 수 밖에. 결국 생전 관련 없었던 곳으로 쫓기듯이 떠나 끝내 그곳에서 절필 아닌 절필을 하며 석이라는 문학가의 이름은 사라진다. 이는 기행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을까. 소리없이 사라져간 30, 40년대 문학가들의 삶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유난히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 상허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문득 상허가 누구지? 그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는 소설가 이태준이었다. 이상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가 문학활동을 이끌어주던 사람이 이태준이라 한다. 내게는 구인회의 '멤바'로 기억되는 작가다. 그러고보니 이태준은 광복 이후에 어떻게 되었지. 소비에트 사회는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였고, 새로 탄생한 인민공화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의 열렬한 마음을 고백했던 상허에게 당은 오직 자백을 요구했다. 지은 죄가 없는 사람에게. 순수문학에 대해 갈구하던 과거가 발목을 붙잡은 건가. 끝내 이십여 년 전에 문인들의 모임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일생이 '반역적 문학 활동'이라 치부된 상허는 함흥으로 쫓겨간다. 상허가 함흥으로 막 쫓겨갈때 기행은 그것이 곧 자신의 미래가 될지는 몰랐겠지.

 

구인회하니 또 생각이 나는 것이다. 젊어서 요절한 이상과 김유정이 차라리 나았던 것인가. 살아남았으나 해방이 되어서도 가시밭길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으니. 어려서는 일제의 탄압속에서 자랐고 젊어서는 전쟁을 겪으며 겨우 살아남고,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니 꿈꿔왔던 사회는 전혀 이상적이지 못했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으니 끝내 살아왔던 기행이 나았던 것인가.

 

 

 인생의 질문이란 대답하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대답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었다. 세상에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러므로 그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설사 그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일지라도. 벨라는 호숫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섰다.  p.38

 

 

묘하게도 작품 속의 기행의 모습은 저자 김연수 작가와 닮아있다. 김연수 작가 역시 번역가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작품을 써낸다. 이 소설을 쓰면서도 자신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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