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문/책상 앞에

[서평] 검은 꽃 - 김영하

반응형

 


저자 김영하
출판 문학동네
발간 2003.08.20


김영하 작가를 좋아한다. 어렵게 베베꼬아 쓰지 않는 문체는 글이란 이렇게 써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문득 들 정도로 편안하다. 그러나 글이 편하다고 해서 작가가 담아내는 내용이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지 않나.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그러나 독자의 머리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내공이 필요한 일이고, 나는 김영하 작가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탄탄한 내공을 가진 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말도 잘해.

그러나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김영하라고 말하기엔 조금 부끄럽게도 작가의 작품 중에 못 읽은 것들이 참으로 많아서... 신간 중에 흥미를 끄는 것이 없을 때는 주섬주섬 읽고 싶었던 김영하 작가의 책을 하나씩 읽어나가려 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읽게 된 책은 김영하 작가의 2003년 작품, 장편소설 <검은 꽃>.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 없어서 이틀동안 이 책을 붙잡고 있었고, 마냥 철모르는 어릴 때가 아닌 그나마 '사고'라는 것을 제법 할만한 나이가 된 지금에야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2014년 판에 실린 해설에서는 '검은 꽃'을 '산송장'이라는 단어에 비유하며 의미들의 상상적 조합일뿐 실제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결합의 단어라고 말한다. '검은 꽃'은 상징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형상, 즉 유령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1905년 멕시코로 이민을 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가 이름 모를 유령이 되어버린, 조선의 '검은 꽃'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주로 '김이정'과 '이연수' 두 사람의 서사가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소설은 김이정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감긴 눈 앞에 선연하게 나타났던 제물포의 풍경을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김이정의 죽음의 순간에서 시작하여 다시 그 죽음의 순간에서 끝이 나는 이야기다.

김이정 - 부모를 잃고 고아로 보부상에 끌려 떠돌아다니다 서울에 이르러 도망쳤고, 종로의황성기독교학생회에서 황성신문에 실린 대륙식민회사의 광고를 보고 제물포에서 멕시코로 향하는 일포드호에 몸을 싣는다. 제물포에서 우연히 만난 퇴역군인 조장윤에게 '김이정'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일포드호에서 서로에게 반했던 연수와의 정을 잊지못하고 멕시코에서도 계속해서 정을 통하지만, 강제로 그녀와 헤어지며 미국으로 가려한다. 그러나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서 이를 넘지 못했던 이정은 어쩌다보니 혁명군에 들어가 군인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가 몸담았던 군의 세력이 약해지고, 끝내는 조장윤과 함께 300만 달러를 약속하며 과테말라 혁명군의 용병으로 가게 되지만, 끝내 과테말라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연수 - 황제의 육촌 이종도의 딸로, 양반댁 규수였으나 가세가 기울어 이종도의 결단을 따라 가족이 함께 멕시코로 가게 된다. 그러나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에서는 망해버린 나라의 귀족따위를 대우해줄리 없었고, 정을 통했던 이정과의 사이에 아이도 생겼으나, 다른 곳으로 팔려가게 된 이정을 죽는 날까지 다시 못 만나게 된 연수는 아들 섭이를 낳기 위해 통역사 권용준에게 의탁했다가 도망쳤으나 중국인에게 잡혀 음식점에 일하면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조장윤과 함께 건너왔던 퇴역군인 박정훈을 만나 그와 연을 맺게 된다. 박정훈이 죽은 이후로는 그가 모은 돈으로 고리대금업자와 포주가 되어 돈을 긁어모으며 멕시코시티에서 75세의 나이로 죽는다.

이외에도 마치 나라 밖에서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뜻을 펼쳤으나, 정작 과테말라 땅에서 개죽음을 당할 것을 예감하고 동지들을 버리고 냅다 도망쳐 멕시코 메리다의 '한인 지도자'로 살았다던 조장윤, 통역사로 함께 건너와 솔찬히 돈을 모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아편 중독자로 살다 가진 돈을 모두 잃고 끝내는 일본인으로 오인받아 수용소에서 죽은 권용준, 허례허식은 물론 양반님네들의 쓸모없는 사고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해 부인은 물론 자식들에게 짐만 되었던 양반 이종도, 그리고 종도의 아들로 황제의 핏줄이었지만 권용준에게 붙어 통역으로 성공하였으나 쿠바혁명에 휘말려 결국 땡전 한푼 남지 않게 되었던 진우, 바오로라는 이름의 신부였으나 멀디먼 멕시코 땅까지 와서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었던 박광수, 대한제국의 마지막 악사였던 김옥선 등 한명 한명이 가진 역사가 저마다 기구한 인물들이 등장하였다 사라졌다.

1905년 4월 4일, 제물포를 벗어나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던 1033명의 이민자들은 낯선 땅에서 생각지도 못한 노예생활에 모진 고초를 겪었지만 소중히 간직했던 대한제국의 여권은 나라가 망해 쓸모없는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렸고, 불합리한 계약에도 끝내 살아남은 이민자들은 차마 조국으로 돌아갈 여유조차 없었다. 결국 낯선 땅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이들은 남의 나라의 혁명에까지 휘말리기까지 한다. 소설은 총 3부로 나뉘는데 1부는 일포드호를 타고 제물포에서 멕시코까지 가는 이야기, 2부는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에서 그들이 겪는 고초와 삶, 그리고 멕시코 혁명에 휘말려 살아남았던 이들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3부는 옛 마야문명의 땅이었던 과테말라의 띠깔에서 잠시나마 일본인으로도 중국인으로도 죽을 수 없어 자신들만의 작은 나라를 세웠던 이정의 이야기이다. 같은 시대에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의 동아시아의 정세 따위는 이 소설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의 이야기는 현실감이 없게 느껴지면서도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살아지는 대로 그저 살아가는데 급급했던 이들의 이야기였고,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삶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꼭 무언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바래서 살아남았다기 보다는 살아지니 살아졌던. 그래서 이민자들로부터 지금의 멕시코 한인들이 태어나지 않았는가. 저 먼 하와이땅에도, 더 낯선 멕시코땅에도 비슷한 생김새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유래에 얼마나 아픈 이야기가 숨어있었나 생각하게 된다.

단순한 한편의 소설이라고 읽고 덮기에는 참으로 많은 여운이 남았다. 그것을 뭐라 표현할 수는 없으나, 여러 서평들에서 비슷하게 공감하든 나 역시 허무함, 허망함 정도의 단어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아메리칸 드림이나 코리안 드림과 같은 연장선상의 단어가 아닐지. 그러나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아무리 아둥바둥 살아보려 애써도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책 어느 언저리에 그런 문장이 있었다. 역사엔 요행이 없었다. 맞다. 역사에는 결코 요행이 없었다. 그렇게 남의 나라에 기대어 살아남는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치 않았던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삶에도, 인생에도 요행은 없는 것이 맞다. 그것이 소설 <검은 꽃>을 읽고 난 나의 한줄 소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