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자 전미연
출판사 열린책들
발간일 2020.05.30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신간 리뷰.
한국이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다.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사랑하고, 많은 책을 낸 작가인데 정작 나는 완독했던게 그 옛날 『뇌』. 그나마도 읽은지 10년도 훨씬 넘어서 줄거리를 봐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독후감이 필요한 이유. 다만 기억나는 것은 베르나르만의 정말 독특한 소재 선택과 예상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이다.
『기억』은 주인공 르네 톨레다노가 우연히 전생의 기억을 체험하는 퇴행최면을 통해 최초의 전생, 1만 2천년 전의 아틀란티스인 게브를 만나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랑스인으로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르네는 역사가들이 역사의 승리자들을 위해 '선택'한 역사가 아닌, 그들이 숨긴 '진짜 역사'가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신화 속의 이야기로만 알려져있던 아틀란티스는 그의 영혼이 실제로 경험했던 '진실'인 것이다.
르네는 게브에게 아틀란티스에 곧 다가올 대홍수를 미리 알리고, 배(방주)를 만들어 재앙을 피하라고 전하며, 아틀란티스가 신화가 아닌 실재했던 역사임을 알리기 위해 애쓴다. 그 과정에서 그에게 최면을 걸었던 오팔이 기꺼이 그를 돕고, 프랑스뿐 아니라, 지중해 건너 이집트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함께 한다.
지금의 르네는 111번째의 환생으로, 르네에 앞서 캄보디아 승려였던 피룬, 1차 세계대전의 참전병 이폴리트, 많은 유산을 남기고 죽었던 레옹틴 백작 부인, 인도 궁궐에 살던 아름다운 여인 샨티, 고대 로마의 갤리선 노잡이 제노, 그리고 마지막에는 일본 사무라이 야마모토까지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나라와 인종, 다양한 삶을 살아왔다. 그가 눈을 감고 계단을 내려가 닫힌 묻을 열면 그의 눈 앞에는 111개의 각 번호가 쓰인 문들이 있다. 그 문 너머 그의 111개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는 때로는 현실에서의 절실함 때문에 전생 속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르네의 도움을 받은 과거의 르네의 '영혼'은 기꺼이 그를 돕는다.
사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덮고 나면, 퇴행최면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사실상 '로맨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약간의 스포일러를 풀자면, 마지막은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이미 그 전에 여러 번 떡밥을 던져서 어느정도 예상이 되었다.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 같은 기분이 들지만, 주인공을 역사교사로 설정한 점, 특히나 단순히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역사교사라는 점과 '후생의 삶은 전생의 내가 마지막 순간에 원했던 희망대로 선택되어진다'는 점, 그래서 그 끝에는 21세기 현대를 사는 프랑스의 역사교사 르네가 된다는 점이 아틀란티스라는 숨겨진 신화를 역사로서 찾으려 한다는 스토리와 절묘하게 연결이 된다.
여기에 유년시절과 전생의 어느 한 부분에 크게 영혼의 상처를 입었던 정신분석가이자 최면가인 오팔과의 만남, 그리고 이야기 내내 오팔의 퇴행최면을 위해 애쓰는 르네와 오팔의 관계성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부분이다.
사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해서 갑자기 학생들에게 교과서는 틀렸으니 진짜 역사를 가르치려 들거나, 혹은 아틀란티스가 정말 존재했던 역사인 것처럼 가르치려 들때는 자기가 안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그것을 강요하려는 오만함과 그에 대한 거부감이 들어서 주인공에게 영 정이 붙지 않았다. 오해하지마시라. 나도 교과서 밖의 진짜 역사 이야기를 꽤 좋아한다. 다만 내가 흥미를 가져서 직접 그것을 찾는 것과 남이 지식을 강요하여 보게 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왜 이렇게 나대(?)나 싶을 정도로 정이 안가는데, 게다가 친구라고 하나 있는 동료 과학교사는 도움을 요청했다 하면 자꾸 문제만 일으켜서 빌런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는데(왜 자꾸 도움이 안되는 사람한테 도움을 요청하나 싶어 짜증이 날 정도) 그에 대한 임팩트 있는 반전은 없었다.
이 이야기가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되려고 그러나 싶어 2권은 정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았다. 다 읽고 나니 1권과 2권의 표지가 서로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1권은 남자, 2권은 여자. 그 둘은 분명 작품의 누군가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 읽고 나서야 표지가 보였는데, 표지를 인지하고 나니 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완벽한 '로맨스' 작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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