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세랑
출판사 문학동네
발간일 2020.06.05
2010년부터 활동했다는 정세랑 작가의 2020년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쉼표까지 꼭 붙여서 써야하는 『시선으로부터, 』. 쉼표의 의미는 '시선'으로부터 뻗어나간 그녀의 자손들이 시선이 그러했던 것처럼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갈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6.25 전쟁을 겪고 난 후 시선은 친척의 반강제적(?) 도움으로 하와이로 가서 살게 된다. 하와이에서 그녀의 삶의 방향을 확 비틀어준 나쁜 남자, 독일의 유명한 화가였던 마티어스를 만나 함께 독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마티어스가 자신에게 행하는 폭력과 억압을 참아내며 화가로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끝내 첫 번째 남편인 요제프 리를 만나 한국에 돌아와 다시 정착하게 되면서 그녀는 명혜, 명은, 명준 세 남매를 낳게 된다. 요제프 리는 향수병을 겪으며 결국 떠나가고, 시선은 한국 광고계의 큰 손이었던 홍낙환을 만나 그의 딸이었던 경아를 품게 된다.
시선의 삶은 명혜의 두 딸 화수와 지수, 명준과 아내인 난정의 딸 우윤, 경아의 자식인 규림과 해림에게도 이어져 시선으로부터 나온 삼대는 시선이 죽은 지 꼭 10년 만에 절대 자신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시선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딱 한 번,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가게 된다. 하와이에서 엄마 또는 할머니인 시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각각 찾아오며 소설은 마무리 된다.
시선의 자식들은, 손녀들은 모두 시선과 관련된 이야기 보따리 하나쯤은 갖고 있다. 그렇게 모두가 시선에 대해 반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만큼 기억들을 갖고 있고, 어쩌면 그들이 살아오는 동안에 알게 모르게 시선의 삶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화가를 꿈꿨으나 작가가 되었던 시선과 회화를 배우러 유학을 갔으나 복원 전문가가 된 명준을 거쳐 역시 마찬가지로 조소를 공부하려 했으나 컨셉 아티스트의 길로 들어선 우윤에 이르기까지 삼대의 닮아있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물론 그녀의 강단을 가장 닮은 듯한 명혜와 어쩌면 시선이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비껴섰다면 살았었을 또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듯한 명은, 그리고 그 어느 자매들 못지 않게 시선에게 진심이었던 경아까지. 모두 조금씩 시선의 삶의 한 조각들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정세랑 작가의 이 한 마디가 이 소설을 관통하는 문구 그 ㅈ체이다. 어쩌면 전쟁을 겪고 해외로 나가 예술로 진로를 정하고 돌아와서는 IMF 등의 풍파를 견뎌내면서도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심시선'이라는 사람의 삶은 정말 판타지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판타지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선의 삶이 잔뜩 갈려들어갔다. 마티어스의 폭력으로부터,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당당히 견뎌낸 시선에게 한 번쯤 제사상을 차려주고 싶다는 명혜의 소원은 험난한 20세기를 살아낸 시선을 위해 21세기를 살아내고 있는 그녀의 자손들이 바치는 애정과 사랑이 맞는 것 같다.
이토록 어렵지 않게, 쉽게 읽히면서도 깊이를 담고 있는 작가라니. 이제서야 정세랑이라는 소설가를 알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더불어 애정하는 작가를 한명 더 알게 되었다는 기쁨과 새롭게 읽게 될 작품들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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