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피터 스완슨
역자 노진선
출판 푸른숲
발간일 2020.05.25
"우리 아버지는 괴물이었고, 어머니는 피해자였죠. 그래서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겁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저자 피터 스완슨의 스타일리한 스릴러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헨리에타(헨)는 옆집의 매슈와 미라 돌라모어 부부의 저녁식사 초대를 받는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옆집을 구경하던 중, 매슈의 서재 벽난로 위에 놓은 펜싱 트로피를 본 헨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헨은 매슈가 '더스틴 밀러 살인사업'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고, 이런 의심은 곧 확신이 된다. 문제는, 헨이 매슈가 살인자임을 안다는 사실을 매슈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헨은 경찰에 증언을 하려 하지만 조울증을 앓던 헨의 과거에 일어난 사건 탓에 경찰은 헨을 믿어주지 않는다. 살인마의 이웃에 살게 된 헨은 어느새 그와 '특별한' 관계가 되고... 헨은 과연 매슈 돌라모어의 범행을 밝혀내고, 또 이 살인자로부터 무사할 수 있을까?
이번 작푸메서 독자를 비교적 빨리, 이야기의 초반에 등장인물 중 하나인 매슈가 '더스틴 밀러 살인사건'의 범인임을 알게 된다. 많은 장르소설의 목표가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일진대 이렇게 초반에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공개하고도 긴장감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는 게 피터 스완슨의 능력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조울증'이라는 설정을 증인이 되는 등장인물에게 부여함으로써 상황이 쉽게 풀리지 않도록 만들고, 이야기 밖에서 모든 것을 다 아는 독자에게는 과연 살인자와 증인의 관계가 어떻게 풀려갈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책소개]
| 서평
페이지는 400페이지가 넘어서 책이 두껍지만 글자 크기가 커서 부담이 없다. 게다가 집중만 한다면 쉽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번역도 거의 거슬리는게 없어서 읽기 편했다. 이야기는 아주 초반부터 주인공인 헨이 의심한대로 더스틴 밀러 살인사건의 범인이 매슈임을 밝힌다. '누가 범인인가, 의심하는 그가 범인이 맞는가'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슈는 헨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재빠르게 눈치채지만, 태연하게 또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그의 새로운 범죄를 목격하고 경찰에 증언까지 하는 헨이지만, 경찰은 조울증을 앓고 있고 과대망상증으로 인해 예전에 동급생을 공격했던 그녀의 전적때문에 믿지 않는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여자와 오직 그 여자에게만 말할 수 있는 남자. 이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변화가 이 작품의 재미 중 하나이다.
"그런 마음이 있기는 했죠. 동시에 당신이 하려는 말을 듣고 싶기도 했고요. 우린 이상한 관계죠. 당신은 내게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난 그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못 하고요." - p.310
매슈는 아무도 헨의 말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오직 헨에게만 그의 솔직한 감정을 말할 수 있다.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매슈는 오직 헨에게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무시무시한 살인자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유일하게 본인이라는 생각에 헨은 초반에 느꼈던 두려움, 공포가 아닌, 뭔가 '미묘한' 감정을 매슈에게 느끼게 된다. 헨은 자신이 매슈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그를 설득하고 더이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자수할 수 있도록 설득시킬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매슈의 문제는 뿌리깊었다.
매슈는 오로지 남자만 죽인다. 그것도 여자들을 괴롭히고 그녀들에게 해를 끼친 남자들만. 또한 매슈는 피에 대한 공포증 혹은 두려움이 있다. 그의 이런 면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되었다. 끊임없이 아내를 괴롭히고, 폭력을 가했던 아버지와 남편의 폭력을 견디면서도 바람을 피고다니며 가정에 철저하게 냉정했던 어머니. 매슈의 생각과 행동의 방향은 부모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헨과 매슈의 관계변화와 헨의 남편인 로이드, 매슈의 아내인 미라가 처해지는 상황, 그리고 결국 매슈가 맞이하게 되는 결말까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결말에 이르러 매슈에 대한 반전은 책이 중간 이후부터 뿌려진 떡밥에 어느정도 예상이 갔지만(매슈에게는 리처드란 남동생이 있다. 있는데 좀 많이 이상한 놈이다), 마지막 몇 페이지에 나온 또 다른 반전, 헨 자신조차도 잊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뭔가 살짝(?) 억지스럽지 않나 싶었다(그녀는 왜 그토록 더스틴 밀러에게 집착했는가).
다만 왜 영어 원제가 'Before She Knew Him' 에 대해서는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의미가 보이는 듯했다. 원제 그대로를 제목으로 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him이 매슈를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매슈일지 더스틴일지.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역시 이중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매슈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증인일지, 혹은 더스틴의 범죄일지. 어쨌든 그녀는, 헨은 그 둘 모두의 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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