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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덕질라이프

에디 레드메인 필모 따라가기 - 대니쉬 걸 (The Danish Girl,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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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016.2.17 (한국 기준)

원작 The Danish Girl (데이비드 에버쇼프, 2000)

 

감독 톰 후퍼

출연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 게르다 베게너(알리시아 비칸데르), 울라(엠버 허드), 헨릭(벤 위쇼), 한스(마티아스 쇼에나에츠)

 

 

줄거리

 

내가 변하는, 사랑이 변하는 놀라운 순간과 마주치다.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 풍경화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와 야심 찬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이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파트너이다.
어느 날, 게르다의 아름다운 발레리나 모델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게르다는 에이나르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 에이나르는 이제까지 한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날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그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에디가 스티븐 호킹으로 나왔던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이후 그에게는 항상 Oscar-Winner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대니쉬걸을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아쉽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는데, 그만큼이나 높이 평가받을만한 작품이었다. 에디가 너무 좋아서 에디얼굴만 봐야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넘비기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가 참으로 깊다. 에디를 통해 에이나르 베게너라는 사람을 그리고 릴리 엘베라는 사람을 그리고 이 세상 수많은 릴리들의 마음을 헤아려봐야하는, 가볍지 않은 영화다. 덕분에 에디가 너무나 예쁘게 나왔지만 두 번은 못 보겠다.

 

영화를 보면서 딱 2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에디 찬양말고). 첫째는, 에이나르를 사랑한 게르다의 마음. 그녀의 사랑은 남녀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오롯이 인간 에이나르를 사랑해준 사람. 그녀와 같은 상황에서 누가 그녀처럼 남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지지하고 응원해줄 수 있으랴. 어떻게 저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하고 궁금해봐도 답은 하나였다. 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자신의 남편을 사랑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 그것말고는 도무지 정답이 없었다.

 

그래서 두번째 든 생각은, 내가 과연 게르다였다면 어땠을까. 그녀와 같은 선택을, 남편에 대한 무한한 지지를 보내줄 수 있을까. 아마도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는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감정의 가장 밑바닥에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보호의 의식이 강할 것이다. 내가 아니라 너를 원망해야 내가 덜 다치니까. 그러나 게르다는 힘들고 방황했을지라도 함께 감내하고 싶었고, 누구보다 에이나르를, 릴리를 이해해주었다.

 

그래서 어쩌면 릴리가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감정이 들만한 몇몇 장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첫번째 수술 이후 릴리가 에이나르에게 자기는 신경쓰지 말고 새 삶을 시작하는 식의 대화를 할때. 근데 또 그게 마냥 릴리 나빠라고 보이지 않는 건, 어쨌든 에이나르는 죽었고, 온전히 릴리만 남았다. 그러나 릴리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누려본 적조차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꿈꿔왔던 것을 이뤄나가고 있을 뿐. 그녀는 에이나르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게르다에게 전과 같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없었고 그러기엔 그녀 자신의 결핍이 너무 강했다. 또 게르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릴리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수단일 수도 있으니. 아, 결국 이기적인 게 맞으려나. 하지만, 불쌍하잖아 릴리.

 

릴리가 너무 불쌍하다. 영화에서는 마치 게르다를 위해 스타킹을 신고 발레 슈즈를 신는 그 순간에 뭔가 달라지는 것처럼 묘사가 되었지만, 사실 에이나르는 이미 예전부터 느껴왔던 것이다. 자기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다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밖으로 풀어낼 생각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기 때문에 그는 그냥 억누르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게르다는 에이나르 안에 릴리를 깨워준 것일지도. 그렇다면 에이나르 안의 릴리는, 그녀의 여성성은, 그녀의 진정한 정체성은 오랜 세월 눌려 와 빛을 보지 못했다. 에이나르는 성공한 화가였고,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부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실로 진정한 행복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릴리가 불쌍했고, 그녀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이 얼마나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지 그 허전한 마음의 깊이를 실로 헤아릴 수 조차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에디 연기 최고지이지 말입니다(이 말하고 싶어서 근질근질). 아니 일단, 외모가, 미모가, 내 할말을 잃었소이다. 특히 에이나르의 미모가 진짜 내 마음을 너무 후려치네. Eddie is Suit, Suit is for Eddie. 클래식한 수트에 쌓여있는 에디는 정말 완벽하다. 정갈하게 머리를 넘기고 작품을 그릴때의 에이나르는 예민미까지 더해져 나덕후 막... 막 그래요, 행복해요. 이 갈색머리는 또 왜이렇게 찰떡인가 싶으면서, 아내인 게르다보다 더 하얗고 창백한 피부가 회색톤의 수트와 너무 찰떡이란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에디가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정말 소중한 재능있는 배우를 놓치뻔 했다.

 

아름다운 우리 릴리. 아내인 알리시아가 작고 날씬해서 그렇지, 사실 릴리도 늘씬하고 예뻤다. 키가 그렇게 큰데도 여장이 어색하지 않고 찰떡같이 어울리는게 애초에 본체인 에디가 워낙 슬랜더라. 릴리가 게르다와 함께 있어도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아름다움은 결코 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예쁜걸. 둘이 같이 있을때 느껴지는 건 그래도 에디가 키가 커서 좀 골격이 있다는 것 뿐이지, 정말 예뻤어. 꾸미고 나서면 사람들이 그렇게나 넋을 놓고 쳐다보기까지 했으니(심지어 접근하는 남자들도 있고), 에이나르 안의 릴리가 얼마나 더 갑갑했을지...

 

 

 

 

 

+) 에디 필모 깨부시기에 열을 올리는 중이긴 하지만, 에디가 출연한 작품들이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덤벼볼만한 작품들은 아닌지라, 한편 한편 소중히 생각하고, 영화와 관련된 지식들도 좀 찾아보고, 할 수 있다면 메이킹필름 같은 것도 찾아보고.. 그렇게 하면서 에디 덕질도 하고 영화 공부도 하고 에디 공부도 하고(???) 그런거지 뭐 덕질이. 트렌스젠더라는 용어 자체도 없었던 그 시기에,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덴마크의 1920년대는 더욱 경직된 사회였다하니 에이나르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보는 내내 나의 인생연극이었던 '프라이드'가 생각났다. 특히 에이나르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여러 의사들을 보며.

 

그녀의 용기와 선택, 그리고 그녀의 아내가 보여준 사랑과 용기가 많은 결핍된 이들,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싶다. 나 역시도 릴리와 게르다, 에이나르를 통해 잠깐이지만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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