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문/안방 1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24회 최종화 리뷰

반응형

드디어 미스터 션샤인이 끝났다. 이 헛헛한 마음은 한동안 그 어떤 드라마도 채워주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나의 인생 드라마에 등극하셨으며, 또다시 김은숙 작가에게 패하고 말았다(그녀의 전작 도깨비를 무척 애정하였다). 이 후기는 울다 지친 자의 몇 글자 끄적임이다.

 

국뽕 참으로 차오르게 하며 마지막회가 끝났다. 다 떠나고 애신만 남았다. 애신은 만주로 넘어가 독립군들을 가르치며 여전히 자신의 조선을 지키고 있었다.

 

24회 오프닝은 얼마나 찬란했던가. 죽어가는 함안댁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울부짖는 애신이 행여나 들킬까 어떤 이들은 비단으로 그녀를 가렸고, 어떤 이들은 일본인들의 총 앞에 죽음을 각오하고 막아섰다. 그 어느 날, 애신이 어느 조선 여인을 지켰을 때처럼 조선이 그녀를 지켜주었던 장면이 얼마나 뭉클했던가. 시작부터 국뽕이 제대로 차오르는 장면이었다.

 

 

 

동매가 죽었다. 동매는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진고개의 무신회 무리들을 싹 쓸어버리면서 일본에서 낭인들이 오기까지 열흘 정도를 자신의 남은 생이라 세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애신이 그를 찾아와 남은 빚을 갚았다. 이제 더는 오지 말라는 동매와 떠나려는 것이라면 돕겠다는 애신. 그러나 동매는 이번엔 애신의 가마에 오르지 않겠다 거절한다. 그러자 애신은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이 계속 나를 괴롭혔노라 고백한다. 그것으로 족했다, 동매는. 평생 붉은 비단자락의 애기씨를 마음에 두었던 동매에게는 그저 그것만으로도 살아온 가치가 있었으니. 제물포에서 그를 찾아온 무신회 낭인들을 한명이라도 더 죽이겠다며 막아서다 결국 죽었다. 한명이라도 더 애신에게 닿지 못하도록. 참혹한 그의 마지막은 이미 죽은 몸이나 말에 손이 묶여 한성쪽으로 끌려가고 있었으나 그의 남은 마음은 그와 반대방향으로 떠났다.

 

동매 역시 히나처럼 죽을 것 같다는 예감은 드라마 초반부터 했지만, 역시 죽었구나. 살아서 더는 행복해질 수 없는 삶이라면, 차라리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떠나는 동매를 기꺼이 보내줄 수 있다.

 

 

 

희성도 죽었다. 희성만큼은 살 줄 알았는데. 유진의 카메라에 일본의 참혹한 탄압을 모두 담아내고, 그는 나라를 판 이들의 얼굴도 모두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그 사진은 먼 훗날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땅 속 깊이 묻어두었다. 의병의 명단과 함께. 그는 편파적인 신문을 썼다는 이유로, 잡혀 들어가 모진 고문 끝에 죽고야 말았다. 모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한다며, 달, 별, 꽃, 황은산과 고애신과 함께 불리울 수 있다면 영광이라며 그는 그렇게 기꺼이 또 죽어갔다. 그의 마지막 길에 조부가 남긴 시계는 없었다. 비로소 할아버지의 업을 털어내고 떠날 수 있었을까.

 

23회에서 아버지에게 남은 이들을 지켜달라했던 부탁은 결국 희성의 유언이 되었다.

 

황은산도 죽었다. 그 뿐 아니라 애신과 함께하던 의병 대부분이 조선 땅에 남아 마지막까지 조선을 지키다 일본의 총칼아래 그 선명한 생명을 다해갔다. 보잘 것 없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소중한 생명들이 그 빛을 바래어갔는지. 의병들의 손도장이 찍힌 태극기가 휘날리며, 그야말로 국뽕에 차오르라며 대놓고 넣은 장면에 차오르다 못해 눈물이 줄줄.

 

 

 

 

그리고, 유진도 죽었다. 유진마저도 죽었다. 이미 지지난회부터 유진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싶었지만, 영광과 새드 엔딩 그 가운데 어딘가쯤에서 그도 죽었다. 원하던 바대로 애신을 지키다 죽었다. 유진은 남만주로 가 이덕문과 송영을 지키기 위해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던 애신과 함께 기차에 올랐다. 단 한 발밖에 남지 않았던 총알. 유진은 나란히 앉아있던 애신의 손을 꼭 잡아주고 그 남은 한발을 쓰기 위해 특등칸으로 갔다. 거기서 구로다 남작을 인질로 삼아 일본군들을 뒷칸으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는 다음칸으로 넘어가기 전, 애신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울지 마시오. 이것은 나의 히스토리이자 러브스토리오. 그래서 나아가는거요. 당신의 승리를 빌며."

 

"그대는 나아가시오. 나는 한발 물러나니."

 

그리고 마지막 남은 단 한발을 기차고리를 끊어내는데 썼고, 유진은 뒤의 일본군들의 총에 맞아 결국 자신의 삶을 마무리지었다. 그렇게 유진은 이방인으로서, 그러나 누구보다도 조선의 독립에 힘썼던, 애신이 사랑했던 '최유진'으로 자신의 삶을 끝냈다. 터널 속 애신이 그와 헤어지며 '최유진'이라 외치던 그 슬픔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그제야 비로소 유진은 조선인이었다. 애신이 지키려고 했던 조선의 사람. 그리고 나도 오열했다.

 

의병들의 이름을 모두 묻어버리라는 이토 히로부미의 명령과 고종의 앞에서 눈물로 오열하며 의병의 이름 하나하나를 외치던 역관 임관수, 그리고 그 앞에서 소리 내지 못하고 울고 있던 고종. 관수는 마지막으로 유진이 한성의 외국인 묘지에 묻힐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카일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읽며 눈에 눈물이 가득찼던 카일이 내 마음을 후려쳤다. 남겨진 자들이 이렇게 안타깝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울더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 유진이 죽고나서 12년 후인 1919년, 외국인묘지의 유진의 묘 앞에서 어느 청년들이 인사를 한다. 가장 앞에는 어느새 훌쩍 자란 도미가 있었다. 유진의 뜻을 이어받은 또다른 미스터 션샤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쓰겠지.

 

 


 

 

 

 

고가 애신.

 

미스터 션샤인은 애신의 성장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조선 사대부가의 영애로, 황제의 스승이자 청렴한 선비였던 할아버지의 손녀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부모님의 딸로서 의병이 되어 독립운동을 하게 된 것은 애신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혼란의 조선 땅에서 손녀가 제 한 목숨은 지키기를 바랬던 할아버지 고사홍은 장포수를 통해 애신을 훈련시켰다. 글의 힘보다는 총의 힘을 믿었던 애신은 총을 들고 나라를 지켰다. 자신과 함께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의병이라는 한 테두리 안에 그들은 모두 같은 사람이었으므로. 그런데 그녀의 앞에 한 이방인이 나타났다. 그 이방인은 조선인의 외양을 지닌 미국인이었다. 애신이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언어를 사용하였다. 유진과의 첫만남은, 유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순간은 애신에게 충격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사사건건 자꾸 부딪히는 이 이방인을 어느새 애신은 마음에 넣어두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그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 유진을 통해 호기심을 갖게 된 애신은 학당에 가서 영어를 배운다. 총명한 애신은 금새 영어를 배우고 유진의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김춘수의 시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나는 그에게로 가 꽃인지 나비인지 하여튼 의미있는 무언가가 되었대매. 유진은 애신에게 불리우고 이름이 쓰여지게 됨으로써 비로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리 조선 후기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신분제가 살아있는 당시의 조선에서 사대부집 애기씨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와 함께 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신선하지 않는가. 두 사람의 마음은 더욱 깊어져서 '러브'까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들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신분제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 애신은 유진이 노비의 자식인 것을 알고 고뇌하였으나, 이 커플은 끝내 신분의 벽을 넘었다.

 

그러나 달콤함은 짧고, 짠함은 길다더니, 커플의 행복은 다시 어두워지기를, 희성과 혼인을 하지 않기 위해 사홍의 뜻을 꺽어내기도 했던 애신이지만 총칼로 위협하는 이완익의 앞에 애신의 집안은 풍지박살이 나버렸다. 조선의 현실이 그들 사이의 벽이 된 것이다. 애신의 의병활동을 돕던 유진이 미국으로 가버리게 되면서 애신은 의병들과 함께 더욱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쓴다.

 

그저 총을 들고 쏘던 애신은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집안사람들,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모두 잃고, 그 과정속에서 생의 반려를 만나 그와 사랑하고 다시 그와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성장하였다.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힘없는 조선의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을 여인이 총을 들고 복면을 쓰고 검은 정장을 입은채 누구보다 앞서서 나라를 지키는, 어느 누군가의 삶을 엿본것이다. 이름없이 죽어간 수많은 의병들 중 하나였던 애신의 삶을 들여다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애신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런데 또 연기는 어떠했나. 가녀린 체구와는 다르게 당당하고 다부진 여성의 면모를 보여준 김태리의 연기가 이 드라마의 성공을 이끌어준 열쇠였다고 생각한다. 유진도 동매도 희성도 애신을 사랑했지만, 애신은 그렇게 누군가의 보호만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고 기꺼이 자신도 내던질 수 있었던 사람. 그래서 바등쪼가 애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단 생각도 들면서, 그런 당당함이 연기에 제대로 드러나면서 캐릭터의 매력을 더욱 살려주었다. 연기와 외양과 심지어 목소리 톤까지 모두 완벽하였으니. 훌륭한 캐스팅이었다고 감히 칭찬을 해본다.

 

개인의 삶의 행복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더 큰 가치를 추구했던 수많은 애신들이 있었다. 그 많은 애신들과 또 그들과 함께 했던 수많은 의로운 이들이 있어서 그래도 조국이라 불릴 수 있는 이 나라를 물려받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아직은 좀 더 질척대며 이별을 미뤄보려 한다.

 

"눈부신 날이었다.

우리 모두는 불꽃이었고,

모두가 뜨겁게 피고 졌다.

 

그리고, 또다시 타오르려 한다. 동지들이 남긴 불씨로.

나의 영혼은 여직 내리지 않아서 작별인사는 짧았다.

 

잘가요, 동지들. 독립된 조국에서 씨 유 어게인."

 

 

Good-bye 가 아니라, See you.

 

미스터 션샤인은 애신의 앞길을 밝혀주던 유진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총을 들고 복면을 쓰고 정장을 입고 사내처럼 나아가 나라를 지키던 애신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신의 생의 빛으로 모두를 비추며 나라를 지키며 져간 수많은 이름 모를 션샤인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안녕, 이방인.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영광이었으니. 내 마음 속에서 조금은 천천히 떠나주시기를 Mr.Sunshine.

 

 

한동안 그 어떤 이야기도 미스터 션샤인이 내게 준 감동을 대신해주지는 못할 것 같다. 어찌 그대를 잊으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