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019.12.26
장르 역사드라마
국가 한국
러닝타임 132분
감독 허진호
출연 최민식(장영실), 한석규(세종), 신구(영의정), 김홍파(이천), 허준호(조말생), 김태우(정남손), 김원해(조순생), 임원희(임효돈), 오광록(이순지), 박성훈(이향), 전여빈(사임), 윤제문(최효남)
후기 REVIEW
인생 베스트에 손꼽는 영화가 나왔다. 이미 예고편의 “영실이”, 이 다정한 한 마디에 치이고 간터라 영화를 받아들일 마음이 몰랑몰랑해져있었다.
사실 첫 장면에서부터 누가 안여 바퀴를 부숴뜨린건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안여가 산산조각 나 진흙창을 나뒹구는 임금이 힘겹게 일어서서 고개를 조아리는 신하들과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허망히 보는데서 나는 이미 세종의 마음을 읽은 듯 했다.
시작부터 울컥했다. 명나라 황제의 패를 향해 절을 하는 노쇠한 군주와 그의 아들. 군주의 신하는 명나라 황제가 보내온 칙서를 통역하여 읽기 전 머뭇거린다. 끝내 떨리는 음성으로 조심히 읽어내려가는데 눈물 한 두 방울이 툭툭 떨어졌던 듯도 싶다. 명나라 앞에 속절없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던 왕과 신하들. 3일안에 장영실을 잡아오라는 사신의 말을 듣고 일어서다 쓰러지는 세종의 모습에 심장이 철렁. 이미 그 장면에서 나는 거하게 치이고 만 것이다. 국뽕에 취하는 걸 넘어서서 아주 절여지고 말았다.
안여사건과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의 상상력,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상상력
뿌리깊은 나무에서 아쉬웠던 점은 장영실의 존재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드라마는 훈민정음 창제와 밀본에 집중해야했기 때문에 이외의 다른 세종대왕의 업적은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보여주지 않았고, 장영실 역시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한다. 영화는 신분의 차를 뛰어 넘어 2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한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와 위대한 성군, 그리고 그들이 함께 꿈꾸었던 것에 집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안여사, 여기에 장영실과 나아가 세종대왕의 가장 크고 위대한 업적까지도 연결시킨다.
그토록 제 사람을 아꼈던 세종대왕이었을진데, 왜 유독 장영실에 대해서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일까. 영화는 이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하고, 1442년에 안여사고로 인해 곤장 80대를 맞고 사라진 장영실과 그의 뒷 이야기를 픽션으로 풀어낸다.
장영실은 부산 동래현 관청에 소속된 노비였으나 타고난 재주가 조정에 알려져 태종 집권시기에 발탁되었다고 한다. 영 세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장영실의 재주를 눈 여겨 보았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호조판서 이천이 장영실의 재주를 알아봐 데려왔다고 임금에게 고한다. 세종이 즉위 후 정5품 행사직을 하사하였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사대부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보다 낮은 별좌직을 주는 것으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명의 도움없이 오롯이 조선의 힘으로 홀로 서는, 그리하여 조선의 백성들이 더 잘 살 수 있길 바라는 성군이었던 세종과 뛰어난 천재 과학자, 모든 공돌이들의 대선배 장영실, 이 두 천재들이 합심하여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천문 의기들을 명의 도움없이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기어코 이들의 성과는 명황제의 귀에도 들어갔으니(아마도 명에 충성스런 사대부놈들이 몰래 알렸겠다), 감히 대명의 것을 도적질했다는 죄로 세종은 장영실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안여사건이 일어나기 3일전부터 과거와 현재의 시점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장영실을 구하기 위해 세종은 아비가 그랬던 것처럼 기꺼이 피를 뒤집어 쓸 준비도 한다. 감히 명에 붙어 왕을 능멸하는 사대부들을 벌하고 장영실을 지키기 위해 세종은 태종이 입었던 검은 곤룡표를 입고(와 진짜 개멋있어. 검은 곤룡포 너무 잘 어울려서 나 진짜 무릎 갈릴뻔) 신하들이 모두 모여있는 근정전에 든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제일 베스트인데, 안여바퀴에 손 댄자 누구인가 찾으며 "역모다" 외치는 세종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가만가만 조곤조곤 자애롭게 말하는 스타일이지만 정말 한 번 빡돌면 답이 없는 사람이죠. 아버지가 태종이면 말 다했지. 아들이 아버지를 안 닮았을리 있나. 그저 아비가 피로 이룬 태평성대에서 아들은 굳이 검을 빼들 필요가 없었을 뿐.
똑똑한 천재과학자 장영실은 세종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알아챈다. 그리고 왕의 큰 꿈을 위해 그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서로를 향한 말과 달리, 서로를 보는 눈은 두 사람의 우정이 얼마나 깊고 깊었던 것인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었다. 목소리만으로도, 눈빛만으로도 연기할 수 있다는게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두 대배우의 만남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어디 그뿐이랴. 이 영화에 한석규, 최민식 두 배우의 연기만 논하기엔 다른 조연배우들이 만만치 않다. 꽃보다할배의 그 분은 어디로 갔는지 정치9단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신구 배우의 영의정과 임금에게 사사건건 건방진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사대부 정남손의 김태우 배우, 짧고 굵은 등장이었지만 그만큼 어마어마한 이미지를 심어준 조말생의 허준호 배우(그토록 그의 사직을 허락치 않고 죽을때까지 부려먹었다던 세종대왕님...), 작품의 분위기를 가볍에 풀어주던 선공감의 관리들 조순생, 임효돈, 최효남의 김원해, 임원희, 윤제문 배우까지. 스크린을 꽉꽉 채운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닌지.
멜로 영화의 대가 허진호 감독의 연출이라 그런가, 어째 화면에 세종과 영실 두 사람이 잡히면 괜히 내가 설렌다(?). 함께 밤하늘의 별을 보는 장면이라든가, 임금의 침전에서 새카만 창호지 벽의 별을 보는 장면이라든가, 아니 왜 두 사람이 서로 운우지정을 나누는데 내가 설레는 거죠. 이건 전부 감독님 때문일테다.
개인적으로 내게 세종대왕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오직 한석규 배우만이 유일하다. 그만큼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그의 존재는 정말 강렬했다. 백성을 위해 밤낮없이 공부하시고, 수많은 발명을 이끌어내며, 심지어는 글자를 만드시어 60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우수성을 자랑하며 한국인을 자랑할 수 있도록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가게 해주시는 우리의 성군 세종대왕. 그러나 사실은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적들을 감내하셔야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아비의 피빛 그늘과 그런 아비로 인해 집안이 멸문되었던 어미의 분노와 슬픔을 참아내야했었다.
위인전에서 읽었던 것처럼 백성을 위해 이것저것 만드시고, 글자도 만드셨어요 이 한 줄에는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간 이도의 고뇌와 외로움, 역경이 사무쳐있었던것이다. 나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인간 이도가 보여준 날것의 모습,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쓰고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외로웠던 인간 이도의 모습을 보고 어떤 깨달음을 얻기조차 했다.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드는 것도 모두 내 탓이라고 울분을 담아 소리치는 이도의 모습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 가장 솔직하고 그래서 강렬하게 이도를 연기했던지라, 한석규 배우가 또다시 세종을 연기한다는 소식이 정말로 반가웠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보니 그간의 세월동안 오히려 더 깊어진 그의 연기에 그저 눈물쏟을 뿐이었다. 그때의 세종이 날카로운 칼 같았다면 지금의 세종은 칼을 품은 붓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 나는 그냥 석규옹 짱팬이다. 이 말 하고 싶어서 이 리뷰를 이렇게 돌고돌아 길게 썼다. 그냥 영원히 어디 박제시켜버렸으면 좋겠다. 킹세종규석한 이렇게. 신구슨배, 민식슨배, 준호슨배보다 어린 막둥이 석규슨배짱짱.
한줄 요약 :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영화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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