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2019.1.6 ~ 2.10
신시컴퍼니
마크 로스코 - 정보석
켄 - 박정복
누가 너 왜 연극 레드를 봤느냐 물으신다면, 저는 에디 레드메인 때문에 봤다고 대답할테에요. 진짜 어지간히도 빠져서 덕질 중인데. 에디가 영국에서 초연했던 연극 Red에서 화가 로스코의 조수 켄 역을 맡았고, 2010년 64회 토니어워즈에서 남우조연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내가 관심을 가져 안가져. 영국에서 에디가 출연했을 때의 원작을 볼 수는 없으니 (너튜브에도 짧은 트레일러 영상만 있을뿐), 그 대신이라도 국내에 올라오는 라이센스 작품이라도 보자는 심정이었다. 마침 연극 레드가 이번데 5번째 공연을 올리는 시기였기도 했고. 그래,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또 에디였다. 에디가 켄 연기하는 거 보구 싶다 흑흑흑
시작은 다소 불순하였으나(?) 공연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것 같은 대학로바닥의 연뮤 느낌, 분명히 다른 스토리인데 인물들간의 관계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아닌 느낌의 2인극, 3인극에 줄곧 시달리다가 본 연극 레드는, 내가 왜 빨리 이 작품을 보지 않았나 스스로를 혼내고 싶었을 정도.
특히 켄도 켄이지만, 로스코가 관객을 압도한다. 로스코 역의 정보석 배우님 짱짱짱. 왠지 감기에 걸리신 것 같아서 토요일 종일 공연 잘 하실 수 있나 그런 걱정가지 들 정도였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대사를 무사히 소화해내시며, 섬세한 연기까지 더해지니. 백날천날 TV에서 느아쁜 놈 연기하시는 것만 보다가 이렇게 진짜 코앞에서(내가 2열인데 1열 사람이 안와서 난 진짜 코앞이었다) 연기하고 움직이고 말하는 걸 보니 이야 새삼 감동이. 특히 화가라는 사람들에 대한 어떤 이미지, 이를테면 예술가의 예민미랄까. 이런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시는 듯하여 더욱 감동이었다. 마지막 커튼콜 때 뭉클해하시는 것 같아서 나두 막 덩달아서 뭉클.
연극 레드는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 화가 마크 로스코(정보석, 강신일 역)이야기다. 1958년 뉴욕 시그램 빌딩에 자리한 포시즌즈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받은 마크 로스코가 40여 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돌연 갑자기 계약을 파기한 사건에서 '그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가상의 인물 조수 '켄'을 등장시켜 로스코와 켄, 두 사람의 대화로 구성된 2인극이다.
작품을 보기 전에 프로그램북을 읽고 들어갔는데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미술사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보다보면 아, 이거 아까 미리 읽었던 그 내용이다! 이러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고, 이때쯤 되면 중반까지 왔구나, 이때쯤이면 끝나는 구나 예측이 가능했다. 이 이야기는 마크 로스코의 씨그램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담아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전 세대와 앞으로 올 세대의 충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의 입체파를 몰아낸 마크 로스코의 추상표현주의는 앤디 워홀의 팝아트에 의해 위기를 맞이한다. 입체파를 밟아버린 그의 자신만만함과 앤디워홀과 그에게 열광하는 대중들에 대한 분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려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 등등이 로스코가 뱉어내는 대사와 감정들을 채우고 있다.
연극의 제목이자, 온 무대를 채우고 있으며, 그들이 보고 있는 이 '레드'는 '살아있음에 대한 열망이자 열정'을 뜻한다고 한다. 로스코는 진실을 추구하고, 불멸을 꿈꾸는 인물. 그는 끊임업는 삶의 불균형 속에서 '레드'라는 무기를 가지고 매 순간 살아 있기 위해 분투헀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고, 숨을 쉬는, 그리하여 진정으로 존재하는 작품들에 그의 영혼을 담아두려 했다. 매 순간 살아있기 위해, 일분 일초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을 그 간절함, 열정, 처절함, 그런 것들이 내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고 나온 나의 감상 한 줄이다. 2019년 첫 연극 관람으로 참 괜찮은 작품을 선택했다.
* 사진 출처는 하단에 표시
* 작품 내용은 상당부분 프로그램 북에서 차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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