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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책상 앞에

대니쉬걸(The Danish Girl,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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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쉬 걸
국내도서
저자 : 데이비드 에버쇼프(David Ebershoff) / 최유나역
출판 : 현대문화센타 201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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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단순하다. 어디선가 영화 대니쉬걸보다 원작이 더 해피엔딩이라는 말을 들어서. 주인공인 릴리의 삶이 영화보다 원작에서 더 행복하다고. 그 말만 믿고 릴리의 행복을 보기 위해 책을 빌려왔다. 1월 1일부터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450여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페이지가 몇 장 남지 않게 되자 나는 초조해졌다. 릴리의 마지막이 올 것만 같아서. 그녀는 완전히 여자가 되기 위해, 사랑하는 헨리와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 마지막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그 수술은 잘되지 않은 듯 하다. 소설의 결말은 닫히지 않았지만, 그녀의 수술을 담당해주던 의사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였으므로, 예감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휠체어에 탄 릴리는 엘베 강 너머를 본다.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연이 끊어져버린다. 마치 하얀 유령처럼 아래로 쑥 떨어졌다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그 하얀 연이 엘베 강을 넘어 릴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실이 끊어진 연이 날아가며 릴리쪽으로 넘어온다는 장면 묘사는 그다지 해피엔딩을 상징하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해피엔딩인 줄 알았는데, 물론 소설의 릴리는 완전한 여자가 되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와의 결혼도 약속했다.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을 마음껏 받아보았으니 해피엔딩인가. 릴리, 부를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그 이름.

 

영화와 소설은 각자의 방식으로 픽션과 실화를 섞어놨다. 그래서 영화가 소설의 원작이라기 보다는 그냥 영화와 소설 모두 실화를 기반으로 각자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당연히 소설이 좀 더 에이나르라는 인물에 대해 정보를 전달해준다. 그는 아내였던 게르다보다 더 작고 말랐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클라인펠터 증후군이나 SRY 유당전자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기 때문. 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에 왜 아이가 없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어느날 느닷없이 아내의 부탁으로 발레슈즈를 신어보고 드레스를 걸쳐봤다고 해서 내 안에 무언가가 깨어난다는 그 설정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데, 생물학적으로 또 심리나 정서적으로도 분명 어떤 베이스가 있었고, 발레슈즈와 드레스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에이나르와 릴리를 이해하는데 있어 텍스트와 정보의 측면으로는 소설이 더 좋았고, 영화는 배우의 감정선이 어마어마했다. 이래서 에디 레드메인 액팅갓이지요(나는 덕후).

 

에이나르와 릴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다만 에이나르는 자기 안에 숨어 있는 릴리의 존재 자체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일뿐이고(그러나 줄곧 무의식적으로 뭔가 맞지않다는 느낌을 사는 내내 지녀왔고), 그저 릴리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세상밖으로 나올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만약 그때 게르다가 에이나르에게 모델이 되어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원래 모델이었던 안나가 제시간에 왔다면 에이나르 안에 릴리는 영원히 없었겠지.

 

게르다(소설에서는 그레타로 바꾸었다. 또한 덴마크 사람이었던 그녀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으로 설정하였다)라는 여성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는 어떻게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었지? 아니, 단순히 남편이라는 두 글자가 아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것을, 그 변화의 끝에 결국 자신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얼마나 에이나르를 사랑했기에 그녀는 릴리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에이나르를 향한 게르다의 사랑 앞에 나는 그 어떤 것도 진실되지 못할 것이라 감히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에이나르를 사랑했고, 릴리로 인해 그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왔고, 또 릴리가 힘들고 괴로워할때 그녀의 힘이 되어주었다. 온전히 릴리를 얻는다는 건 영원히 에이나르를 잃는 것인데도 게르다는 에이나르가 살아주기를 바랬다. 결국 그녀는 남편을 잃었지만 결국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었다. 다행히 그녀의 곁에는 에이나르도 릴리도 아닌 다른 사람이 있어 게르다 역시 또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어 내심 다행이기도 했다.

 

본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소설을 읽어서 다행이다.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많이 생략되고 압축이 될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 온전히 소설에는 살아있었다. 덕분에 좀 더 게르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고, 에이나르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 속의 릴리는 좀 더 여리고 소녀같았다. 그리고 1926년이라는 시대, 덴마크라는 공간, 화가라는 두 사람의 직업. 게르다와 에이나르가 각자 살아온 과거의 삶도 안내되어 있어 영화에서 풀지 못했던 인물에 대한, 당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었다. 그러고나서 영화를 다시 보니 다들 진짜 천상 배우이다. 표정 하나,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 종이 몇십 장에 풀어내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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