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관심이 간다. 아이돌이 사는 세상인데, 무대가 끝나고라... 보기전부터 입안이 쓰다.
첫 등장은 2013년 6월 데뷔한지 5일 된 초짜 아이돌이었던 방탄소년단. 그리고 5년뒤 진짜 말그대로의 월드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다큐의 마지막은 데뷔한지 이제 3개월이 된 공연소녀라는 걸그룹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어린 소녀들이 5년 뒤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실력과 노력만으로도 안되는 세상이 어디있느냐 묻는다면 단연코 대한민국의 아이돌판이라 대답할 수 있을테니.
H.O.T.의 토니, 씨야의 남규리, 카라의 허영지, 엠블랙의 천둥, 달샤벳의 수빈, 스텔라의 가영 등등등. 우리 토사장님은 1세대의 대표 아이돌이라는 뭔가 상징적인 인물로 섭외한 거 같은 느낌이고, 남규리 역시 비교적 다른길로 성공한 아이돌로 다소 상징적인 느낌이긴 한데, 카라나 엠블랙, 달샤벳, 스텔라는 좀 다르다. 나는 그들의 데뷔, 시작은 목격했지만 그들의 마무리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사실, 어느날 갑자기 전속계약 만료 따위의 기사 한줄로 무심코 지나쳤을 뿐이다.
가끔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보면 나오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고. 돈도 많을 거고 뭘 하든 잘 하지 않겠냐고. 우리도 안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잘 살거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는 걱정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평범한 또래의 친구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암암리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딱히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공부를 포기한다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학교생활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더 강할 것이다. 또래와의 생활, 평범한 학교친구들과의 수다, 평범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인생의 꽤 큰 갈림길이다. 그들의 기회비용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녔을지 걸어보지 못한 나로써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들이 포기했던 것, 그들이 맞바꿨던 것들의 소중함보다는 무대 위의 그 몇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고,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들. 그들이 바로 아이돌이었다.
천둥은 엠블랙 이후 악기 하나를 사기 위해 인터넷 결제를 하는 것도 어려워했다고 한다. 이게 어디 천둥뿐이겠는가. 정말 어린나이에 연습생을 거쳐 데뷔하고, 숙소생활하느라 주위 살마들은 멤버들 아니면 매니저뿐이었다면 굳이 뭘 살 생각조차 필요없지 않았을까 싶다. 해외 스케줄이 있으면 항공기 티켓이나 호텔은 그냥 준비되어 있는 것일뿐,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걱정이 안 될 수 있을까.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은 심정일진데..
가장 안타까운 점은,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바람에 활동이 끝난 시점에도 여전히 그들은 어리다. 여전히 배워야할 것이 많은 어른이들이지만 그들의 괴로움, 어려움을 들어줄 사람들이 많지 않다. 기껏해봐야 같은 아이돌 선배들인데 그마저도 그 이야기를 들어줄만큼의 위치에 올라와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 엔터테인먼트 사회는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은채 아이돌을 찍어내는데에만 급급하고, 정작 마지막 순간이 왔을때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버렸다며 나몰라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7년이 지난 다음이 아니었을까.
5~7년의 시간이 지나고 찾아온 인생의 한 단락을 끝내는 페이지에서, 과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며 무대를 내려온 아이돌이 느꼈을 고민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7년이면 회사 대리급인데 입사하고 3개월될때까지 하루에도 수십번 때려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하물며 아이돌이 어땠을까. 게다가 오래 다닌 회사에 사직서를 내던지고 나오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회사를 뒤로 하고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우나 앞으로 뭐 하고 살아야하나라는 생각 앞에 막막한 건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혹은 그 이상의 나이가 된 그들에게 모두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 다시 태어나도 아이돌을 할 거냐는 그 질문에 대부분이 하겠다고 답하는 것을 보며, 확실히 그동안의 삶이 혹은 어느 무대위의 3분 동안의 짧은 순간이 그들의 평생을 걸어갈 힘을 준 것은 아닐까 싶었다. 가영의 경우는 스텔라가 좀 아쉽게 선정성 프레임에 갖혀버려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시 씩씩하게 연기자의 길을 걸어가보겠노라 하는 것을 보면, 분명 화려한 조명 아래의 어느 순간이 그들이 살아가는데 원동력을 준 것은 분명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삶의 단 한 순간만으로도 평생을 살아간다는데. 지나온 그 시간들이 힘들었을지언정 후회하지는 않는 듯한 인터뷰어들의 대답에 세상 쓸데 없는 걱정이 한결 나아졌다.
특히나 보면서 다행인 것은 우리 애들은 또래에 비해 그래도 데뷔가 늦은만큼 많은 경험을 쌓았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고등학생, 대학생활이 있었고, 본인 스스로는 흑역사라 칭할만큼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뛰어봤고, 스스로 여행도 가봤고, 얼마나 부지런한지 운전면허를 따서 열심히 차도 몰아봤다(이건 나보다 훨씬 낫다). 또 어떤 아이는 학업을 포기했던 것에 대해 아쉬워하며 바쁘게 활동하는 지금에도 시간을 쪼개서 부지런히 공부한다. 또 어떤 아이는 지나 온 시간동안 받아들였던 상처가 흉터가 되어 더 단단해진만큼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걸 보면 성공한 아이돌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된다. 준비되었던 것일까 우리 애들은. 다만 기회와 타이밍이 없었을뿐인가. 그러나 세상에 저만큼이나 준비가 되어 있는 애들은 차고 넘치지 않았는가. 어느날, 어느 순간, 너와 내가 만났던 것은 정말 로또에 당첨되기 보다도 어려운 행운이 아니었을지. 그렇게 너희와 우리가 만나 세상 가장 높은 곳의 조명을 너희가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함께 걸어왔던 길. 누군가는 그 시간이 짧다고 아쉬워하고 누군가는 조롱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지 않았나. 단 한 순간이 평생을 간다고. 우리의 김스타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순간들이 앞으로 나의 삶의 평생이다.
#POOQ(푹) 다큐멘터리 SBS 스폐셜 528회 '아이돌이 사는 세상 - 무대가 끝나고' 다시보기 이미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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