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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안방 1열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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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2019.10.04 ~ 2019.11.24 (16부작)

연출 김진원

극본 채승대, 윤희정

출연 양세종(서휘), 우도환(남선호), 김설현(한희재), 장혁(이방원), 김영철(이성계), 안내상(남전), 조이현(서연), 지승현(박치도), 인교진(박문복), 이유준(정범)

 

마지막 16회가 끝나고, 뒷끝이 약간 애매하다. 방원의 나라를 열기 위해 죽어야만 했던 서휘로 끝난 터라, 왜 휘가 죽어야하는지 잘 이해가 안간다. 스토리 이해가 안되서. 약간...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이랄까. 내게 이 드라마의 최고와 끝점은 12회였다. 그 뒤로 보지말걸... 4회 안에 스토리가 정리될 거라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어두컴컴해가지고 누가누군지 잘 보이지도 않았던 포스터... 이제와 보니 짠하다

역사를 좋아했지만 문과에 가지 못했던 이과생은 평생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하다. 하도 우려먹어서 더 쥐어짜낼 것도 없을 거 같은데 이성계와 이방원의 이야기를 잊을만하면 자꾸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된다. 또 이방원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애정배우 하나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나의 나라 1회를 봤고, 그때부터 뚜렷하게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이 드라마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냥 시간되면 틀어놨다고 하는게 맞겠다.

 

고려말미의 혼란한 나라의 정세 속에서 위화도 회군 즈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드라마는, 고려 제일 검이라 불렸던 뛰어난 장수였던 아비는 억울한 모함을 받아 죽고, 여동생과 함께 겨우 살아남아 그저 함께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랬 '서휘', 이성계를 도와 고려를 부수고 조선을 열었던 당대의 권력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서자도 아닌 얼자로 태어나 평생을 그에게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했던 '남선호', 기생의 딸로 태어났으나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힘을 가지려 하는 '한희재', 그리고 새 나라를 여는데 모든 걸 걸었으나 인정받지 못했던 왕자 '이방원'의 이야기.

 

초반에는 의외의 연기를 보여준 설현이 기대되어서 자꾸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의외로 그녀의 연기와 대사톤, 발음 등이 사극 연기에 제법 어울리는 것이다. 내가 아는 거라곤 안시성의 그녀뿐이었는데, 연기력을 판단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등장이었다. 드라마 초반의 희재라는 캐릭터는 죽은 모친의 복수를 하기 위해 칼을 갈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기생(이라 하기엔 좀 적절하지 않은 듯 하지만)인 여성이었고, 설현이라는 배우는 꽤나 그것을 잘 살려내었다. 다만, 드라마 후반에는 이방원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남성 중심 서사에서 가상의 인물인 희재가 빛나지 못해 아쉬웠다. 집 나간 휘와의 멜로도 아쉬웠고. 처음에는 그녀의 캐릭터를 빛내주던 이화루가 후반으로 갈수록 약간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달까. 무슨 행동만 하면 다 이화루의 행수로서라는 단서가 붙어서.

 

솔직히 양세종 배우를 잘 몰랐고, 우도환 배우는 아예 몰랐던 상황에 정말 순수하게 드라마만 봤다. 초반부터 뒷통수 날리는 선호가 마냥 나쁜 놈으로 보이고, 저 미련한 휘는 제 벗을 놓치를 못하니 저 둘은 운명의 단짝인가 왜 저리 못 붙어 안달인가 한심스러워(?)하면서도 계속 드라마를 시청했다. 심지어 휘의 동생인 연을 인질로 잡아 휘를 이용하는 남전, 남선호 부자의 행동은 너무나 옛날옛적 클리셰라 소름이 돋을 지경. 그 와중에 휘를 온전히 이용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를 버리지도 못하는 선호는 그저 답답할 뿐. 이제와 생각하면 선호도 정말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뿐이다. 안쓰러운 놈...

 

사실 나의 치임의 시작은 여기였을 것 같기도.

중반이후부터는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이방원이었다(그렇다, 이 포스팅을 하는 이유다). 이미 영화에서 한 번 이방원을 연기했던 장혁인데(무려 영화관 가서 봤는데 기억이 잘 안나...), 왜 또 선택했을까 들었던 의구심을 캐릭터의 서사가 설명해주었다. 죽을 힘을 다해 새 나라의 문을 열었지만, 아비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공신록에서도 배제되어 철저하게 쓰고 버려진 자. 지나치게 총명하고 야심있는 왕자는 죽이지 않으면 제가 죽을 거라는 운명에 맞서고자 한 이 남자는 버려진 자들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 그것이 '그의 나라'였다. 방원에게 있어 방원의 나라는 스스로 피를 뒤집어쓰지 않고서는 나아갈 수 없는 가시투성이의 모진 길이었다.

 

악독하기 짝이 없는 아비의 저주 속에서 아버지인 이성계는 모질게 끊었건만 아들인 이방원은 여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미련을 두는 것이 퍽이나 안타까웠다. 왜 울어 울기는. 이용해먹고 자기를 내쳐버린 아비에게 왜 혼자만 그리 기대를 하는지. 아비에게 그저 애썼다 그 한마디를 듣고 싶었지만, 끝낸 듣지 못했던 방원은 자신이 죽인 자의 아들에게서 애썼다는 위로를 듣고, 끝내 왕좌의 올라 스스로에게 애썼다며 위로를 했다. 어찌나 마지막까지 쓸쓸해보이던지. 버려진 자들의 나라를 열기 위해 왕좌를 거머줘야했고 그 길에 있는 휘를 죽여야만했으며(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텅 빈 편전에 홀로 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세자 이방원의 모습은 여전히 외로울 그의 앞날을 예견해주는 듯했다.

 

아비의 시퍼런 저주 속에 왕이 되어 조선의 500년 왕조 기틀을 다지고 강대한 왕권 아래에 세종이라는 위대한 왕을 낳았다는 것은 아이러니. 장혁 배우는 "야심보다 버려진 자들의 나라를 세우고 싶은 개혁 군주의 느낌을 살려 연기하고, 이방원의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라고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던데, 그렇다면 제대로 성공했다.  

 

휘를 지켜주는 방원의 따뜻한 카리스마가 폭발한 10회부터 나는 거의 이성을 잃고(?) 드라마를 봤던 것 같다. 이제껏 접해보지 못했던 방원의 캐릭터였다. 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정적에게 맞서고, 그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다니. 이 얼마나 따뜻한가. 이미 치인 덕후가 다시 한번 치이는 순간이다. 이렇게 장혁배우를 내 최애배우 모음에 쏙 넣어놨는데, 결국 휘를 죽여버린 방원의 서사가 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나의 나라는 너희들을 지키는 것이라매요..14회에서).

 

휘의 아버지인 고려 제일검 서검을 방원이 모함하고 죽였고, 살아있는 충성스러운 서검의 부하들(치도를 포함한)이 이를 알게 되어 휘와 접촉하여 방원에게 맞서는 것을 막기 위해 방원은 휘를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이방원에게 있어 포은 정몽주를 죽인 것이나 서검을 모함하여 죽인 것이나 다 같은 서사가 아닌가. 이성계의 아들 중 유일한 고려 문과 시험의 급제자인(심지어 10등이었다고 하다) 방원은 가장 총명하여 썩어빠진 고려를 치워버리고 새 나라를 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 앞에 제 아비를 세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아야 했던 자다. 그러기 위해 덕망 있는 학자를 죽이는 악인의 탈을 기꺼이 뒤집어썼고 그로인해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드라마 내내 보여주었다.

 

서검을 죽인 이유도 이와 동일하지 않은가. 이에 대한 근거는 서검과 방원의 감옥에서의 대화에 있었다. 서검은 방원은 물론 방원이 스승인 자신을 모함한 이유가 바로 이성계였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 관점으로 풀어나가 서검에 대한 죄책감과 온전히 제 뜻만은 아니었음으로 휘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안되었을까. 그렇게 댕청 잘라버리냐고. 생사를 그렇게 함께했으면 휘가 그정도 마음도 몰라줄거냐고 애가 바보도 아닌데.  그냥 선호도 휘도 다 죽어야하는 엔딩은 결정되어있는데 껴맞추려 하다보니 방원의 캐릭터가 다소 구멍이 나는 것을 눈감아 버린 것 같다.

 

몸에 여러번 구멍 뚫리고 눈앞에 아비도 죽고 세상 다 잃은 선호를 빨리 보내주지도 않으면서 끝끝내 휘의 방패막이로 죽게 만들어 저세상 우정도 보여주어야했고(이제 그만 쉬랄때 좀 쉬게 해줬으면 안되냐...),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나의 나라'라던 휘의 서사도 지켜줘야 했고 뭐 이래저래 그냥 다 죽여버리자 죽여죽여하며 끝난 엔딩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데 정말 배우들 연기가 다했다. 편전의 홀로 남은 장혁의 눈물 한방울에 치이고, 맑은 얼굴에 피투성이인 채로 화살받이가 되어 세상 슬프게 죽은 양세종에 두 번 치이니 드라마가 온전히 끝나버렸다.

 

넘나 말갛게 잘생겼... 얼빠 치였다

제목이 가진 의미가 이토록 무거웠고, 또 그 중대함을 드라마는 내내 필사적으로 알려주었지만, 어째 그 큰 뜻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나라가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을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서얼의 차별이 없는 나라,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자들을 위한 나라, 누구가에게는 그저 내 소중한 이들을 지킬 수 있는 나라. 아쉽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장검과 화살이 주축을 이루어 화려한 액션신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장혁 배우의 몇 안되는 검신은 정말... 12회에서 궁궐 앞에서 겨루는 선호와 방원의 검신은 무한 반복으로 돌려봐도 질리지 않는다. 액션신 연출은 참 기가 막힌데,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는 환상이었고. 구멍 하나 없는 훌륭한 연기들이었다. 남전 역의 안내상 배우는 12회에서 죽는 바람에(?) 조기하차했는데 그야말로 최고의 연기였다. 남은과 정도전을 합쳐 탄생한 '남전'이라는 인물은 새로운 나라에서 신하들의 나라를 꿈꾸었고, 그 역시 '나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자였다. 그의 길은 옳다그르다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같거나 다른 것으로만 설명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방원과 대립할 때 더욱 두드러졌다. 드라마 말미로 갈수록 못된 애비 모습이 부각되서 그렇지 초반의 이성계 장군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한 카리스마 대장이셨다. 잘어울린다니까 김영철배우가 역시.

 

그러니 더욱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지 못해 아쉬울뿐. 16부작이 아니라 최소한 20부작으로 했어야 하나 싶다. 그럼 최소한 휘가 왜 죽어야하는지 1회만에 설명하고 땡하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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