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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극장 1열

완벽한 타인 (Intimate Strangers, 2018)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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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018.10.31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코미디

국가 한국

러닝타임 115분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감독 이재규

출연 유해진(태수), 조진웅(석호), 이서진(준모), 염정아(수현), 김지수(예진), 송하윤(세경), 윤경호(영배)

 

 

줄거리

 

우리 게임 한 번 해볼까? 다들 핸드폰 올려봐
저녁 먹는 동안 오는 모든 걸 공유하는 거야
전화, 문자, 카톡, 이메일 할 것 없이 싹!
 
오랜만의 커플 모임에서 한 명이 게임을 제안한다.
바로 각자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통화 내용부터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자고 한 것.
흔쾌히 게임을 시작하게 된 이들의 비밀이 핸드폰을 통해 들통나면서
처음 게임을 제안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상치 못한 결말로 흘러가는데….
상상한 모든 예측이 빗나간다!

 


 

후기 REVIEW

 

토요일 저녁에 배불리 먹고 한껏 늘어져있는데 창조주께서 이서진이 나오는 영화가 재밌다며 보러가고 싶어하셨다. 내가 그 마음에 동하여 그럴까라고 했더니 지금 보러가자!라며 신나서 외치는데(우리집 마나님은 저녁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가는 그런 분이 아니다) 토요드라마를 놓친다며 내가 아쉬워했지만 그런 반항은 깔끔하게 묵살당하고 모녀가 룰루랄라 영화를 보러나갔다. 뭐, 돈은 엄마가 낸다니까 나는 시간만 내는걸로.

 

입소문 제대로 탄 영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개봉날 다른 영화를 보려고 했던지라(그러나 안 봄) 약간 내 관심사에서 멀리있던 작품이었는데 보고 나오니 제법 재밌다. 코미디지만 킬링타임용으로 보기에는 갑자기 뒷목을 세게 치고 지나가는 묵직한 여운도 있다. 아 여운이라기 보다는... 어떤 깨달음? 아니, 깨달음보다는 조금 가벼운.

 

사람이 자신의 모든 진실을 다른 이에게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그 사실이 알려졌을 때 부끄럽거나 창피해서라기 보다는, 타인이 나의 비밀을 공유하기를 부담스러워하고 꺼려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살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나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부모나 배우자에게도. 그 이유는 아마도 괜히 말했다가 긁어부스럼만 생길까봐. 말다툼이나 논쟁을 하기 싫어서. 지금 이대로가 좋으니까 정도의 이유가 아닐까.

 

 

 

보기에는 그럴듯하고 서로 친해보이는 40년 지기 친구들 태수, 석호, 준모, 영배는 핸드폰 알람이 하나씩 울리며 가진 비밀을 하나씩 공유할때마다 사이가 틀어진다. 아니, 사이가 틀어진다는 표현보다는 서로 몰랐던 서로를 보게 된다. 영배와 핸드폰을 바꿔치기한 태수는 게이로 오해받아 수현과 크게 다투기도 하고, 어색해하는 40년 지기 친구들을 목격한다. 영배는 태수 대신 57세 키티 옷을 입은 몸매 쭉쭉빵빵 그녀의 가슴사진을 받아 모두에게 가슴 큰 여자와 연애하는 남자가 되었다. 석호는 분양사기 당한 것을 들킬뻔했고, 하다하다 결국 준모는 레스토랑 직원과의 불륜마저 들키고만다(오빠 나 애기가졌어라는 이 식상한 이야기전개. 그러나 꽤 먹혔다). 서로의 비밀이 하나식 밝혀질때마다 친구들은 서로를 불편해하고 자신들이 알게된 진실에 대해서도 부담스러워한다.

 

남편인 준모가 바람 핀 사실을 알고 반지를 내던지고 나가버리는 세경. 세경의 반지는 계속해서 돌아간다, 마치 팽이처럼. 마치, 영화 인셉션에서 디카프리오의 작은 추처럼. 그 장면이 나오면서 아, 이거 사실은 다 구라겠구나란 생각이 번뜩 스쳤는데, 아니나 달라. 좀전까지 울고불고 헤어지네 마네 난리를 쳤던 커플들이 갑자기 서로 다정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남들몰래 썸타고 있던 예진과 준모의 문자까지. 심지어 태수와 수현은 오랜만에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서로의 비밀을 모르는 서로는 이렇게나 평화롭다. 어느정도 적당한 선에서 사회적인 나를 공유하는 것. 혹은 네가 알고 있는 나만을 너에게 알려주는 것. 이것이 함께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영화 속 남자들처럼 40년지기의 내 모든 이야기를 속속들이 말할 수 있는 친구는 없다(실제로 그들은 모든 걸 공유한 것도 아니었으나). 대신 여러 분류의 친구가 있다. 직장동료, 직장동료들 내에서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절친한 사이 몇명,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사회에서 만난 친구, 덕질하다 만난 친구 등등. 이들간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100%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 그들이 누구냐, 나에게 있어 어느 분류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나는 나에 대한 정보를 달리 공개한다.

 

예를 들어 평범한 직장동료에게는 내가 빠순이임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는 여전히 이 나이먹고도 덕질을 하는 것에 대해서 신기해하는(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이기 때문이다. 대신 덕질메이트에게는 나의 직장생활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는다. 어쩌다보니 어디서 일하는지 정도까지는 알게 되었지만 굳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덕질메이트가 그걸 알 필요도 없고, 알아봤자 필요하지 않는 정보이다. 대학교 친구들은 어떠한가. 그네들은 대학생활에서의 나만을 온전히 알고 있다. 그 앞에 나와 그 이후의 나는 오직 내가 그들에게 말해준 내용일 뿐이다.

 

나에 대한 정보를 조각조각 나누어 사람들에게 일부 나누어주었다. 그들 개개인은 내가 누구냐에 대해 묻는다면 내가 누구라고 온전히 말하지 못한다. 오로지 내가 제공한 정보의 테두리안에서만 나를 이해할 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이 나누어가진 조각을 모두 합쳐도 온전히 나를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조각의 내가 있으니까. 아마 그 마지막 한 조각은 여기 이렇게, 몇글자 끄적이고 있는 나일수도 있다.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다양한가. 그리고 그런 나를 온전하게 담아내고 있는 이 핸드폰이라는 녀석은 얼마나 요망한 물건인가.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 죽으면 주변사람들을 탐문조사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스마트폰만 찾아 조사하면 어떤 사람인지 거의 99프로는 알아낼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사실이다. 누군가 내 핸드폰을 훔치고, 그 핸드폰 속의 나를 조사하여 사칭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내가 이 작은 스마트폰 안에 있다.

 

 

대체로 공감가는 인물은 하나도 없는 와중에, 딱 한가지 공감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세경이었다. 세경은 준모의 불륜사실을 알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연신 구역질을 해댄다. 그리고 위로하러 온 수현에게 말한다. 나는 사실 결혼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혼자서 살고 싶었는데 저새끼(준모)를 만나 이렇게 되었다고. 그리고 세경은 집을 나가기 전 영배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에게 민수씨(영배의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주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오만퍼센트 공감한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는 예진이었는데, 온갖 가식으로 똘똘 뭉쳐뵈서 정감이 가지 않았다고나 할까.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친구를 빙자한 하이에나떼들에게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나만큼이나 내 소중한 이에게 정성을 들여줄 진짜 소울메이트가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 완벽한 타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편하고, 남도 편하다. 서로는 서로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할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는 안된다. 관계라는 것은 때로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촘촘히 짜여진 이 관계망에서 나 자신의 피로함을 덜어내고,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가끔은 한발 물러서서 조용히 나 자신에 대해 입다물고 있는 것은 필요한 행위이다.

 

그러니까 모두 핸드폰 조심! 비밀번호는 내가 떳떳함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정보를 알게되어 무방비하게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타인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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